책에 등장하는 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글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파친코 1권의 주인공은 ‘선자’이라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부산의 작은 섬 영도에서 엄마 ‘양진’과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느 날처럼 선자는 하숙하는 사람들의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어시장에 방문합니다. 선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 학생 두 명이 접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학생은 선자를 겁탈합니다. 그 과정에서 ‘참외를 쥐어 짠다’, ‘낚시 대신 이 년을 잡자’ 등의 언어적 공격은 두 명의 일본인 학생들이 선자를 덮치기 전에 그녀에게 한 말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두 소년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여자’ 선자를 물건 이하의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니 당연히 일본인은 조선인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에 속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를 오래 지켜온 나라이니, 특정 장면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책 전반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인 여자인 선자는 이 시대에서 가장 낮은 계층에 속한 존재입니다. 반면 일본인 남자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일본인 학생은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회적 질타 없이 길 위에서 선자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 이외에도 다양한 장면과 사건이 각 인물들의 사회적인 위치를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선자의 하숙집에서 일하는 ‘동희’라는 인물은 감히 결혼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동희는 선자보다 더 낮은 위치에서 선자의 처지를 부러워합니다. 이처럼 파친코는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갑니다. 그 때문에 독자는 더 치열하고 더 비참한 소시민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파친코는 그 시절 넉넉하고 행복했던 조선인은 없다고 느껴질 만큼 소시민의 삶과 사회적 배경을 잘 담아낸 책입니다. 또한 어둠 속에서 빛이 더 반짝이듯, 절박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피어나는 삶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