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국내 출판 초기에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던 책으로, 90년대에 큰 히트를 쳤던 소설이다.
일본 문학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20대의 연애와 방황, 우울을 속절없이 풀어낸 점과, 해당 소설의 배경이 일본의 고도 성장기인 6~70년대를 배경으로 개방적이고 정치/문화적으로도 개혁적이었던 당시 일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이끄는 소설이다.
해당 소설의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스스로를 별볼일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강조하며, 조금은 시니컬하고 항상 무덤덤한 자세를 일관되게 가지고 있다. 책과 영화를 감상하며 홀로 지내기를 좋아하는 와타나베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기즈키의 갑작스러운 자살은 10대의 그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준다. 이는 그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 역시 마찬가지였고, 상실감을 견디지 못했는지 나오코 역시 갑작스럽게 연락이 두절되고 이후 20대가 된 둘은 전철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만, 우울증이 심해진 나오코는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와타나베는 그런 그녀에게 몇번 찾아가 최종적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런 그녀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겠다 응원하고 돌아오지만 끝내 나오코 역시 자살한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죽음 직후 목적없는 여행을 떠나 정처없이 방황하고, 나오코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후 주위의 조언으로 대학교에서 친밀하게 된 미도리에게 연락하여 만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책 속의 구절처럼 와타나베의 주위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죽음과 우울을 빈번하게 마주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어떤 독자들은 책 속 인물들이 죽음을 너무 쉽게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한다.
기즈키의 죽음을 함께 경험하였음에도 와타나베는 끝까지 살아가고, 나오코는 이를 견디지 못했다. 이외의 스스로 생을 마감한 다른 인물들도 어떠한 상실감을 견디지 못함이 원인이었다. 같은 상황에 놓여도 사람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감정의 결과 깊이는 모두 다르기에, 결국 사람을 바꾸고 흔들어 놓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한 인물들이 감정적으로 나약하단 의미는 아니다. 그저 감당 가능했던 감정의 경우와 깊이가 달랐던 것 뿐이다.
한편, 유일한 친구였던 기즈키, 사랑했던 나오코를 잃으며 원동력을 잃은 와타나베의 앞으로의 삶은 과연 어떨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앞서 이 책의 국내 번역본은 '상실의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