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하얼빈은 1910년 순국까지, 3인칭 시점임에도 마치 안중근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 같은 현장감마저 느껴진 책이다. 그러니 작가의 말을 포함한 3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부담스럽기는커녕 이토를 태운 열차가 채가구역을 지나 하얼빈에 도착, 쏘고, 4개월여의 신문 후 순국, 그리고 남은 자들의 이야기까지 읽어내는 데 한 호흡이면 충분했다. 책은 오롯이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향하는 여정에 집중한다. 작심한 그에게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말은 오히려 삼켰음에도 모두가 그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 하물며 하얼빈까지 동행한 동지, 우덕순과도 그들은 산산히 부서질 말은 아낀다. 안중근에게는 이토를 살하여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그를 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세계만방에 고하는 것만이 유일했다.
단지한 안중근, 재판 받는 안중근, 순백의 옷을 입고 형장으로 향하는 안중근, 사형 집행 전 안중근이 받은 어머니 조마리아여사의 편지와 친일 혹은 변절이라는 거침없는 표현으로 얼룩져버린 현생과 준생의 일생, 여태 유해를 발견하지 못한 비극 등 ‘안중근’ 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몇 가지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얼빈을 읽는 내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영웅이 조금씩 낯설어졌다. 나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걸까. 천주교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아들 도마(‘도마’는 안중근의 세례명이다) 가 살을 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개개인의 영웅된 서사에 기대어 갈 수밖에 없던 무력한 나라..... ’이토를 쏘고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는 사실 외의 것들이 앞다투어 몰려와 눈앞이 아득해졌다.
기억하고 싶은 열광적인 스토리에 갇혀 그를 제대로 알려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에 눈앞이 캄캄하다. 교육과 산업 진흥이 그에겐 왜 최선일 수 없었는지, 그가 재판정에서 무엇을 그토록 진술하고 싶어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가 사형집행 직전까지 집필했던 ‘동양평화론’의 요지를 알려 하지 않은 채 우리가 감히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하얼빈은 나에게 굉장히 뜻깊은 독서 시간을 선물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