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의 아이들. 암리타와 같은 스파이스가 생활을 지배하고 계급사회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이야기이다. 마치 현대의 대한민국 사회가 보이는 듯 하다. 듄이 쓰여진 지는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대한민국을 자본주의가 지배한 일은 이미 오래전 부터 였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비단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부가 삶의 큰 기준이 되어왔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근대로 시간이 흘러 이미 없어진 줄 알았던 계급은 새로 나온 단어인 '수저론'으로 이미 우리를 계급사회로 다시 밀어 넣었다. 이제는 중세보다 더욱 알기 쉬운 계급이 생겨 그저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었다. 돈에 따라 흙수저, 동수저, 은수저, 금수저로 나뉘며 혹자는 흙수저 아래의 무수저, 금수저 위의 다이아몬드수저 등 세분화된 계급을 나누는 세상이 되고 현대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것에 동조하고 있다. 이것이 옳은 가는 알 수 없다. 다만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더 높은 사람이 된다면 정말로 천민자본주의가 시작되어 원래 수단이 되어야 할 돈은 목적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그 것을 위해 뛰어나가게 될 것이다.
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명예가 남아있는 세계이지만 스파이스라는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에는 고귀한 명예는 없어지고 탐욕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듄의 아이들은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한 고민은 애시당초에 없으며 목적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한 모습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물론 책의 내용은 더욱 희망적으로 흘러갔으나 우리의 삶은 소설이 아니다. 또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잘못될 수 있는 일은 잘못되는 것이 세계의 법칙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속에서 우리는 과연, 마치 소설처럼 욕망을 이겨내고 명예를 되찾은 듄의 아이들처럼 대한민국의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나는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