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 유명한 저서로 <자유론>이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밀의 철학의 요체는 <공리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비판하길 공리주의를 주창한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쾌락과 고통의 양적 측면만 추구하므로, 공리주의 철학은 비인간적이고 비정하다고 여긴다. 공리주의가 부도덕적인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거나,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고자 하는 비인간적인 가치관이라는 비판은 유명하다. 특히 노직의 공리괴물 사고실험은 공리주의가 얼마나 극단적인 철학 이론인가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밀은 ‘쾌락의 판단자’를 통하여 귀납적으로 경험자들이 더욱 ‘바람직한’ 쾌락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인간의 행복 추구는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스러운 인간으로 남을 때’ 질적으로 더욱 고급(?)스러워 진다고 보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는 통계적 혹은 귀납적 추측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하며, 밀도 고차원의 쾌락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은 쉬이 사라질 수 있는 요소임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까지도 정의의 문제를 다룰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리주의의 철학적 베이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저서임이 분명하다.
또한 현생 인류는 점차 도파민에 중독에 익숙해지고 일상에서 자신의 보상회로를 수시로 자극하는, 호모 아딕투스로 진화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중독은 ‘금전’과 연관되어 우리 사회가 점차 문화와 철학이 부재하는, 황량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는 아주 쉽게 공리주의와 친구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공리주의에서 주창하는 쾌락은 밀이 생각하는 ‘저급한’ 무언가일 수 밖에 없다.(과연 저급한 쾌락이 진짜 저급한 지는 논외로 하고 싶다.)그러한 점에서 밀의 <공리주의>를 통해 우리 삶에 공리주의 정의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또 우리가 추구하는 쾌락이 우리의 삶과 사회, 국가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