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남한산성'은 인조가 청나라의 침략을 피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수십일 간 수성하는 동안 펼쳐지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주전파와 주화파가 부닥친다. 주전파의 대표는 예조판서 김상헌이고 주화파의 대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의 주장은 완전히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궁국적인 목표는 정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점으로 같다는 것이다.
예판 김상헌은 "화친으로 적을 대하는 형식을 삼더라도 지킴으로써 내실을 돋우고 싸움으로써 맞서야만 화친의 길도 열릴 것이며, 싸우고 지키지 않으면 화친할 길은 마침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 전, 수는 다르지 않다. 전이 본이고 화가 말이며 수는 실이다. 전이 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판 최명길은 "죽음으로써 삶을 지택하지는 못한다. 의를 세운다고 이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내실이 남아 있을 때가 화친의 때이다. 성안이 다 마르고 시들면 어느 적이 스스로 무너질 상대와 화친을 도모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결국 예판 김상헌은 싸워야 정전 협상이 유리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이판 최명길은 정전 협상은 우리 편이 조금이라도 유리할 때 시작해야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병자호란 당시 주전파는 명분에 매달린 고루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주화파는 호란 당시에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실리에 충실한 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은연 중에 배웠다.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에 전개된 역사를 보면 주전파든 주화파든 명나라에 대한 지극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루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점에서는 같고, 다만 주전파는 최대한 싸워서 협상을 유리하게 하자, 주화파는 우리가 양보할 것이 있을 때 제때 협상을 해서 최대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자는 점이 차이점이었을 뿐이다. 주전파도 끝까지 싸울 마음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기 전에 영화 남한산성을 먼저 보았다. 원전 보다 나은 영화가 없다고 하더니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다면 감동이 더하지 않을까 싶어 아쉽다. '칼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김훈 특유의 간결하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가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