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크레타섬에서 잠시 갈탄광 사업을 하며 만났던 조르바의 삶을 통해 자전적 소설을 완성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며 자신이 마음 가는 일이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조르바와 책 읽고 글쓰기 좋아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계몽가 주인공인 저자를 잘 대비시켜준다.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 조르바란 인물에 대한 평가에 가까운 듯하다. 특별히 극적인 스토리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사건이나 흐름에서 조르바가 보여주는 자신만의 철학은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도와준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조르바가 말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고 음미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책이다.
책 내용은 카잔차키스는 젊은 날 붓다의 사상에도 심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에 나가는 친구와 전보를 주고받으면서 자기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마음에도 없는 갈탄광 사업을 위해 크레타섬으로 들어가며 조르바를 만난다. 30대인 저자는 책과, 글쓰기, 명상을 좋아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이론가이다.
반대로 나이가 60대가 넘은 조르바는 유일하게 읽은 책 한 권이 신드바드라고 할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어디에 얽매이는 삶을 싫어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한다. 방탕할 것 같으면서도 순간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세계와 풍경에 경이로움을 표현하기도 하는 순수함을 보인다. 그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대표격이다. 그를 통해서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타락한 수도원에 불을 지르고, 쉽게 그들을 이용해서 돈을 얻어내는 과감함과 센스가 보이는 인물이다. 젊어서는 많은 열강의 대장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오르탕스 부인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할 정도로 여성에게는 매우 호의적이다. 러시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부와 결혼하고도 쉽게 자신만의 길을 떠난기도 하는 자유인이다. 젊어서 전쟁에 참여했을 때는 온 마을을 불태워 몰살하기도 할 정도로 잔인한 면도 가지고 있다. 조르바는 하나의 단어로 대변되는 인물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두 사람의 사업은 비록 망하지만, 두 사람은 먹고, 마시고, 춤추며 해방감을 느낀다. 동양의 무소유와도 닿아 있는 것을 보면 저자는 붓다를 매우 깊이 사모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르바야말로 진리 속에서 살고 있어. 그의 길이 옳은 길이야!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다른 시대 같았으면 조르바는 추장으로서 부족을 이끌고 앞장서서 도끼로 길을 열었을 것이다. 아니면 이 성에서 저 성으로 돌아다니는 음유시인이 되어 모든 사람(성주도, 귀부인도, 하인도)이 그가 부르는 노래에 매혹당했을 것이다.
저자는 조르바를 이렇게 기억한다. 조르바를 나타내주는 가장 적당한 구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