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 중 한명인 밀란 쿤데라의 저작이다.
이 책은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는데, 영원회귀를 무거움에 비유하고서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비로 이 책 전체를 풀어나간다.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인지, 가벼운 것이 좋은 것인지는 그것이 무게에 관한 내용에 한정된다면, 우리에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사건들을 무겁게 볼 것이냐, 가볍게 볼 것이냐. 무겁게 살 것이냐, 가볍게 살 것이냐의 문제로 나아간다면 조금씩 그 울림이 생긴다.
1980년대 동유럽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공산주의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 속에서 개인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토마시가 테레자를 만나러 고향에 가기 위해서는, 독일에서의 직업을 버려야했고, 자유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테레자를 포기했다면 토마시는 얼마나 슬퍼했을까? 하루? 이틀? 1년? 10년? 과연 영원히 슬퍼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러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 순간 토마시의 머리속에는 베토벤 4중주 중 마지막 악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1889년 니체가 미쳐버린 순간을 묘사하는 내용이었다. 데카르트 이후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한 인간을 대신해서, 니체는 마차를 끄는 말의 목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동물은 원형의 세계관을 갖는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다"라고 표현한 밀란쿤데라는 그 반복된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이 아닌 직선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밀란쿤데라의 책을 읽고있으면, 온갖 철학적 텍스트가 펼쳐지고, 그 사이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만약 영화로 만들기 가장 어려운 소설이 있다면 아마도 쿤데라의 소설이 아닐까? 물론 밀란쿤데라는 본인의 다른 저서 "불멸"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을 이 책에 붙인 것을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