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추천도 있었지만 이 소설의 강렬한 첫 문장에 끌려 이 책을 선택하였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부친의 죽음이라는 매우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첫 묘사치고는 너무나도 생경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대부분의 글들이 묘사한 것과는 달리 이 서사의 시작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기괴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점철하고 있는 좌우갈등과 그 갈등속에서 소위 "빨갱이"로 낙인찍인 '낭만적' 사회주의 운동가인 아버지가 남한사회에서 소위 '정상적인' 삶을 이뤄내지 못하고 사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면서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를 작가는 "진지 일색의 삶"의 "마감'으로 정리한다.
혈육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고아리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뼈속까지 투철한 유물론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를 원수로 생각하는 진영에서는 빨치산 혹은 빨갱이로 불렀다. 그런 고인이 노동절에 죽음을 맞으면서부터 소설의 서사가 시작된다. 서울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상주 고아리는 고향 구례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의 장례식장에서 죽음이라는 삶의 엔딩이 선물한 시대의 화해 혹은 자신이 몰랐던 '빨치산'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산사람으로 사선을 누비며 동지들이 숱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전직 빨치산 고상욱씨는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고향에 터를 잡았으나 농부로서의 그는 의식만 앞선 이였다. 산에서 죽고 살던 동지에게는 위장 자수한 '인사'에 불과했고, 세상은 그를 전향한 빨치산이자 요주의 인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치매를 앓던 고인은 어느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먼 길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유물론자답게 자신의 시원이 먼지이니, 굳이 묘를 쓸 것도 없이 상주 아리에게 타고 남은 재를 뿌리고 싶은 곳에 뿌리라는 말을 남긴다.
상주 아리는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의 뼛가루를 아버지의 이상한 친구 두 명과 동네게 뿌리면서 진정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해방이란 억압된 상태, 원치 않는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뜻할텐데 딸 아리는 아버지는 이미 진작에 자신의 삶에서 해방되어 있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으로 깨닫게 된다. 오히려 해방이 필요했던 자는 남한 사회에서 전직 "빨치산'인 아버지로 인해 평생 마음이 힘들었던 그 자신이었음을 느끼게 된다. 타협과 화해의 시간이 장례라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 점은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다소 무거울수 있는 죽음의 분위기를 고인이 장례식 준비에 나선 사촌들의 몸을 내던지는 애도와 품앗이 그리고 다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의 등장으로 상쇄시키는 일련의 서사적 전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