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보아서는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를 짐작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책을 읽으면서 주제에 스며들게 되는 책이다.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 분류학자를 동경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혼돈이 뒤덮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의 먼지와 같은 사소한 존재임을 듣고 살았지만, 데이비드는 절망에 잠길 수 있는 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목적을 위해 꿋꿋히 나아간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데이비드는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물고기와 여러 생물들을 연구함으로써 파악하고자 했다. 연결고리와 지위를 파악하여 유전적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 목표인 듯 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위협을 받는 순간 속에서도 그가 연구를 이어가고자 했던 것이 단지 그 하나의 목표 때문이었을지 의문을 갖게 된다.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
이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 데이비드의 흔적을 쫓게 되고, 대학 설립장의 사망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지위에 대한 위협을 막기 위해 독을 썼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 또한 순수한 사실에 대한 탐구 및 본질에 대한 탐구와 거리가 있었다. 장애가 유전되는 것을 보고 우생학을 주장하며, 열등한 존재라면 생식 기능을 제한하여 대를 잇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의 주장은 우월하다는 사람들의 잣대에 따라 주관적인 우월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은 약자로 취급되고 폭력에 노출되었다.
이러한 데이비드의 주장은 혼돈을 피하기 위한 주장이며, 데이비드 그 자신 또한 혼돈을 회피하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이런 대목에서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사람임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분류'라는 행위도 '혼돈'을 회피하는 행위로 본다. 어류라는 범주가 물고기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차이들을 덮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심지어 어떤 물고기는 사람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한데, 어류라는 범주에 포함시킴으로써 우리와 선을 긋고, 우리가 가장 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이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어류는 없다는 것이다. 좁은 식견으로 분류를 하고, 정의를 하고, 단어로 표현을 하는 것이 그 대상에 대한 한계를 지어버리는 것이며, 세상을 좁게 보게 된다.
우리는 '혼돈'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사실 혼돈은 좀 더 바라보는 대상을 깊게 바라보는 방식이고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좀 더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잣대 속에서 그 기대에 충족해야만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가 그 잣대에 적응하기도 전에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만다. 이러한 빠른 변화 속에서 변화의 패러다임을 쫓아가고자 우리는 노력하고 있고, 그 속에서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미리 걱정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저자는 책을 통해 이러한 불안감을 갖는 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듯 하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틀을 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그 틀 속에서 맞춰질 필요도 없으며, 틀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조금 더 편안한 시야로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을 그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고기라고 불리지 않는다고 해서 물고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 처럼 세상 속 사람들의 잣대가 변화한다고 해서 나 자신이 사라지거나 내가 살아온 환경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