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그의 시대는 요모조모 뜯어보면 볼수록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화석화한 어떤 딱딱한 물건이 나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와도 같이 새롭게 해석해주기를 기다리는 말랑말랑 한 존재로 보인다.
정조의 비밀편지도 거의 틀립없이 그런 물건이다.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어찰은 얼해 비로소 세상에 그 존재와 가치가 알려진 낯선 사료이며, 현존하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큼 정조시대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게 할 만한 사료이다.
정조의 일거수일투족과 그가 말한 모든 내용은 대부분 정치적 의도를 구현한다. "어찰첩"의 중심적 가치는 거기에 있다.
게다가 이 어찰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공식 사료와 충돌하기도 하고 이들을 보완하기도 한다.
국왕이 행한 정치적 행위의 이면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고 당사자들은 이를 어떻게 느껶는지를 폭로한다.
정조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사료가 제법 많고 널리 알려진 내용도 적지 않다. 반면에 이 비밀편지는 존재 자체가 알려진 게
최근인데다가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 많아서 세상과 학계에 큰 관심거리로 대두했다.
비밀편지는 기왕에 밝혀진 사료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이 특별한 사료의 등장은 정조와 그 시대의 역사를 새롭게 보도록 충동질한다.
법원의 판결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사건에 판결을 뒤집거나 큰 영향을 끼칠 새로운 증거물이 등장한 것과도 같다.
그 때문에 많은 논란이 진행되는 중이고, 앞으로고 그럴 것이다.
정조는 제왕으로서는 드물게 글쓰는 것 자체를 즐겼다. 특히 가까운 신료나 친지 들과의 편지를 주고 받는 일에 특별한 취미를 가졌다.
그의 편지 쓰기가 정치적 행위의 일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편지 애호는 권력의 행사에만 몰두하는 그저 정치인이기만 한 수많은 고금의 정치가와는 격조가 다른 행위이다. 바쁜 시간을 비집고 붓을 휘둘러 편지를 쓰는 정조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인간적 체취가 느껴진다. 비말편지를 비롯한 어찰첩을 연구하면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필자는 "정조어찰첩"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데 참여하면서 비밀편지가 지닌 문화사적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해왔다. "정조의 비밀편지"는 그 같은 최근 연구성과를 풀어서 정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