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재미있으려면 가능성과 한계가 있어야 한다. 독자는 주인공이 가능성의 최대치를 이루기 위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응원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슬픔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로맨스’로 분류될 수 있다. SF이다 보니 현실적인 한계가 없고, 한계가 없으니 긴장감도 떨어진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 나타나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예전의 남자친구보다 다정하고, 용감하고, 능력도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 소설은 차별적인 시각을 다소 내포하고 있다. 경민의 탈을 쓴 먼 행성의 외계인이 한아를 찾아 지구까지 온 것에서 시작하는 소설.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은 퀴어에 대한 주제의식을 발견하게 한다.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여성(지구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안타깝다.
외계인은 한아에게 그의 존재를 속인 채 접근한다. 그러곤 지구방문의 유의미함을 위해 서류가 필요하다고 한아에게 말하고 갑작스럽게 그들은 약혼한다. 한아의 의외의 쿨함이 이를 희생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현실에 빗대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군대에 가기 싫은 한 한국남성이 전세계를 샅샅히 뒤지다 한 개발도상국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여인과 사랑하고 결혼하여 그 나라 국적이 되는 바람에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게 된다면? 지구는 넓지만 그럼에도 만나서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는 남자의 달콤한 말 뒤에는 최초의 목적성이 있던 것이다.
낯선 소재의 사랑으로 뜬금 로맨스를 느끼지만 익숙한 소재에 다시 비추어보면 다소 비극적인 로맨스가 되는 것이 조금 아쉽다. 다만 정세랑 작가가 마음 먹고 로맨스를 쓰면 읽는 독자로서는 심쿵을 막아낼 방도가 없다. 그래서 긴장감이 없는 플롯과 아쉬운 주제는 설레는 감정으로 이겨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먼 외계만큼이나 아득하고도 비현실적이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