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2.12.20에 태어났다. 그러니 올해 만 50이다. 늦은 결혼 탓에 6살 딸이 하나 있다. 와이프도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모두 건강하다.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분양 받은 아파트도 하나 가지고 있어 집 걱정도 없다. 지난 20대, 30대, 40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하지만 난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이 모든 것은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다는 것을. 지금의 것을 얻기 위한 노력보다 지키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위해 첫째는 무엇보다도 건강이다. 둘째는 화목이다. 마지막 셋째는 돈이다.
프롤로그 : 기어이 오십이 되었다. - 너무 좋은 글이다.
지혜로울 줄 알았다. 탯줄을 끊고 반백 년을 살면 웬만한 시련에도 눈 한번 감아낼 강인함이 생길 줄 알았다. 일을 구하고 사랑을 알고 살 곳을 정하고 후세를 만나는 고된 시기를 넘었으니 미끈하고 노련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정치, 경제에 대한 독해력이 생길 줄 알았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안정과 번영의 강가를 걷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 없고 삶은 여전히 치열하고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고 세상의 변화는 어찌나 빠른 지 눈 돌아갈 지경인데 은퇴를, 노후를 준비하느라고 세상은 재촉해 댄다. 영글었던 몸은 퍽퍽해졌고 몸의 기관들도 앞다투어 이상 신호를 보낸다. 살은 늘어지고 뼈는 휘고 이유 없이 아프고 서럽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주춤하게 된다. 그래, 먹고사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게다. 적당히 여유롭게 적당히 건강한 이 중년과 함께하는 방법도 모르겠는데,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노년은 또 어찌 맞이해야 할지 난감하다.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지금이야 말로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갈 적기일 테니. 운동 경기의 전반과 후반 사이에는 쉬는 시간, 하프타임이 있다. 어떤 이는 전반의 전적에 집착하며 탄식의 시간을 보낼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곧 펼쳐질 후반전에서 역전을 기록할 작전타임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똑 같은 시간 앞에서 누구는 지혜를 얻어 나아가고 누구는 후회와 탄식, 탐욕의 굴레에 머물겠지. 영광스럽게 결승점을 통과할지 누추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중간에서 쓰러질지,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