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사회를 만드느냐, 사회가 개인을 만드느냐, 이는 고대부터 역사학자들이 논쟁해온 문제이다. 이조의 전반기 사상계는 세종대왕의 사상으로 지배되었고, 후반기의 사상계는 퇴계산인의 사상으로 지배되었다. 그렇다면 이조 5백년간의 사회는 세종 · 퇴계산인이 만든 바이다.
신라 하대부터 고려 중엽까지의 6백년 동안은 영랑 · 원효가 각기 사상계의 한 방면을 차지하여, 영랑의 사상이 성하는 때에는 원효의 사상이 물러가고, 원효의 사상이 성하는 때에는 영랑의 물러가서 일진일퇴, 일왕일래로 번갈아가면서 사상계의 패왕이 되었으니, 6백년 동안의 사회는 그 양가가 만든 바 일 것이다.
백제의 정치제도는 온조대왕이 마련하여 고이대왕이 완성하였으며, 발해의 정치제도는 고제가 마련하여 선제가 완성하였으니, 만일 온조와 고이왕이 아니었다면 백제의 정치가 무슨 형식으로 완성되었을는지, 고제와 선제가 아니었다면 발해의 정치가 무슨 형식으로 되었을는지, 또한 모를 일이다. 삼경 · 오부의 제도가 왕검과 부루로부터 수천 년 동안 정치의 모형의 되었으니, 왕검가 부루가 아니었다면 조선의 국가사회가 어떻게 되었을는지 모를 것이니, 이로써 보면, 일개 위대한 인격자의 손 끝에서 사회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사회의 자성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다른 한면을 보면, 고려 말엽 불교의 부패가 극도에 달하여 원효종은 이미 소미해지고, 임제종에도 또한 뛰어난 인물이 없고 다만 십만 인의 반승회와 백만 인의 팔관회가 재물과 양식을 마구 소비하여 국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사회는 벌서 불교 밖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기에 급급하였으므로, 안유나 우탁이나 정몽주들이 유교의 목탁을 들고 나와서 두드린지가 오래 되었다. 그 밑에서 세종이 나오고 퇴계가 나왔던 것이다. 그러면 세종은 세종이 되고, 퇴계가 퇴계로 된 것은 세종이나 퇴계 자신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것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삼국 말엽 그 수백 년간 찬란하게 발달한 문학과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소도 천군의 미신이나 율종 소승의 하품 불교로는 더 이상 영계의 위안을 줄 수가 없어서 사회가 새로운 생명을 찾은 지가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의 진흥대왕이나 고루려의 연개소문은 이러저런 여러 종교를 다 통일하려는 새로운 안을 세우려고 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에 영랑이 도령의 노래를 불렀고, 원효가 화엄의 자리를 펼쳤으며, 최치원이 유교와 불교와 선교를 약간씩 모아서 섞는 신통한 재주를 보이자, 이에 각계가 갈채하여 이들 세 사람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랑이나 원효 · 최치원이 모두 본인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사회가 그들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은 사회라는 풀무에서 만들어질 뿐이니, 그렇다면 개인의 자성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도 자성이 없고 사회도 자성이 없다면 역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것을 보면서, 개인이나 사회의 자성은 없으나 환경과 시대를 따라서 자성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1) 사회가 이미 결정된 국면에서는 개인이 힘을 쓰기가 매우 곤란하고 (2) 사회가 이미 결정되지 않은 국면에서는 개인이 힘을 쓰기가 아주 쉽다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나)와 비아(나 아닌 나의 상대)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발전하고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의 상태에 대한 기록이다. 세계사란 세계의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란 조선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고 하고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고하고 그 외에는 모두 비아라 한다. 조서상고사는 조선민족을 아의 단위로 잡고 아의 태어나고 자라고 발달대온 상태를 20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천재 이자 우리민족 최고의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가 서술한 우리민족의 역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