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심리적 박탈감을 동반한다.
나는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없고, 무언가를 하더라도 내 삶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
누군가를 부러워 하면서도 나는 저렇게 해낼 수 없다고 자조하며, 단순히 남의 삶을 따라하는 것 조차 못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갉아먹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후회를 안고 산다. 그리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과거를 자꾸 살펴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은 간과한다.
주인공 노라는 항상 항우울제를 달고 산다. 의욕없이 하루하루 그냥 버티는 것이 일과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피아노 수업조차 수강생을 기다리게 한 그녀는 더욱 절망하며 유서를 쓰고 죽으려 한다.
죽기 직전, 시간은 멈추고 그녀에게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다.
어느 도서관, 그녀의 여러가지 가능성이 책으로 꽂혀있다. 그 책을 펼치면 그녀는 그 삶을 살게 된다.
그 두번째 기회에서 노라는 술집을 운영하기도 하고, 수영선수였으며, 록스타였고, 북극을 탐험하는 지질학자였으며, 동물을 돌보기도 했고,
철학 교수이기도 했다. 노라의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그녀는 수많은 삶을 경험하지만, 어떤 삶에도 정착하지 못한채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노라는 그 어떤 삶에서도 자기 자신이지 않았다. 평행 우주에 사는 또다른 노라의 삶을, 그 또다른 노라인 척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에서 나오고 나면 그 삶에서 했던 후회를 하지 않는 다른 삶을 요구한다. 그 삶에서 나오면 또 다른 삶을,
그렇게 무한히 반복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남을 위해 사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가라니까 가는 학교, 남들이 선망하니까 따라 선망하는 직장,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 세상에서 남, 즉,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지운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아니, '살고 싶다'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과거의 다른 내가 사는 삶을 동경하는가?
하지만 과거의 수많은 '나'도 결국 내 안에 있다.
나는 잠재성이고 미래이다.
우리 모두 펜을 쥐고,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책을 펼치자.
그리고 쓰자.
'나는 살아 있다.'
'누구누구는 살아 있다'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 역시 타인에게 불려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다시 한번 '나는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