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난생처음 도스토예프스키를 접하게 되었다. 러시아 문학 거장 중에서도 톨스토이나 체홉은 학부 때 교양강의로나 다른 경로로 접할 일이 많아 여러 작품을 읽어보았는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책을 구입한 건 몇 년 전인데, 계속 읽다가 실패해서 이제야 다시 집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러시아 문학 특유의 많은 등장인물, 수많은 이름들에만 익숙해지면 너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제야 도스토예프스키를 접하게 되다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후로 죄와 벌, 백치, 악령들 순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읮 작품을 하나 하나 독파해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읽게 된 것이다.
이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작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작품 세계관에 큰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종종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이라고도 불리운다. 실제로 실존주의자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그들 인생의 최고의 작가로 뽑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매우 강렬하다. 책에 나오는 '지하인간'은, 어쩌면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거만하고 이상한 인물이다. 자신을 병든 인간이라고 치부하면서도, 그 어떤 인간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다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지하인간을 어떻게 그리는지 알 수 있다. 지하인간은,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경멸하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병든 인간으로 칭하면서 본인까지 경멸하는 것이다.
이 책의 2부는 '진눈깨비에 관하여'인데, 여기서는 지하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창 모임에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참석해서, 동창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 일을 서술한다. 그 밖에, 매춘부 리자에게 표독스럽고도 인간모독에 가까운 말들을 늘어놓고는 혼자서 전전긍긍, 걱정했던 일을 이야기한다. 지하인간의 경험담과 감정을 고백의 형식으로 읽고 있노라면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의 가치관과 생각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