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꺼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을 읽고 나서였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다른 작가들과 비교할 때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진 작가다. 가명을 쉽사리 사용하는 작가들과 달리, 페소아는 '이명'이라는 호칭을 붙인 여러 자아를 전면에 내세운다. 재미있는 건, 이 각각의 이명들의 철학과 생각이 서로 모순되고, 상호 논리에 반박도 펼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소설가나 영화가 캐릭터를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나아가 페소아의 방식에서 내가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끊임없는 자기모순을 이명으로 인격화하고 글을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로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시대가 복잡하고 기술이 발전할 수록 인간은 더더욱 자기모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인 듯 하다. 페소아가 왜 모더니즘의 선구자인지 알 것 같다.
페소아가 왜 이런 재미있는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모더니즘의 아버지로서 추앙받을 수 있게 되었는지는 이 책 "불안의 서"를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페소아는 책에서 짧은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이명인 소아레스를 소개한다. 소아레스는 철학적이고 실체가 없는 듯 보이는 모호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또 다른 이명을 통해 페소아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삶을 대하는지, 특히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는지 알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예술이란, 삶에서 아주 조금밖에 표출되지 못한 과한 감성이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페소아의 생각이 그의 전반적인 글이라는 예술적 창작물에 드러나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페소아가 평소 느꼈을 감성과 감상들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의 서정적인 글은 언뜻 보기에는 매우 정적이고 차분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하며 어떨 때는 뜨겁기도 하다. 페소아가 항상 성찰하고 고뇌했음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페소아가 소개하는 새로운 감상들과 감정,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