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은 아무리 어려운 개념이라도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할머니가 옛날 얘기 하듯이 쉽게 설명한다. 역설적으로 쉬운만큼 어렵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에 남고 공감하는 내용을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다.
독서와 관련하여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의무감으로 읽지 않는다. 재미없는 데는 띄어넘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는다.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소가 풀 뜯을 때 처럼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는다. 재미있는 책은 읽고 또 읽는다. 내 독서 습관과 똑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 버릇이 유별난 줄 알았다. 집중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이 재미있으면 읽지 말라고 해도 읽지 않겠나?
큰 질문을 경계하라.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질문이 너무 크다. 책 한 권으로도 담을 수 없는 큰 것을 물어본다. 평생 공부하고 써야 할 것을 물어본다. 개미 부류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무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다. 꿀벌은 화분(꽃가루)을 꿀로 변화시킨다(transfer). 그게 창조다. 창조를 위해서는 꿀벌처럼 살아야 한다. 회사 업무를 하다보면 총론은 그럴 듯한데 각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밀한 실행 계획이 없으면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신념을 가진 사람을 경계하라. 신념은 위험하다. 나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8백만 명 유대인을 죽였다. 관점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인간사인데 '예스'와 '노우'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아마도(maybe)를 허용해야 한다. 메이비가 가장 아름답다. 메이비 덕분에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거다. 나도 생각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경향이 있는데 내 신념도 틀릴 수 있으니 내 신념대로 안된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고 내 신념대로 된다고 오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가진 능력과 관련하여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것이 다 선물이었다고 한다. 집도, 자녀도, 지성도 다 선물이라고 한다.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라고 한다. 나도 20~30대에는 내 노력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노력에 비해서 과분한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와 저자의 생각이 일치한다.
이어령 선생의 촌철같은 마지막 어록이다. 두고 되새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