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계가 정말 있는 그대로의 세계인지, 아니면 우리가 인식 할 수 있는 영역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인지,
이것은 오랫동안 철학의 주제로 사람을 사유하게 만들었다.
그의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사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다.
마치 이동진영화평론가가 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우화' 라는 글을
처음 읽었을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쇼펜하우어는 한창 과학과 공업이 발달하는 시기에 반이성주의 철학, 반합리주의 철학을 내세우며 체계적인 철학의 이론을 내놓았다.
제목으로 나오는 의지와 표상은 반대하는 개념으로 작용한다.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인간이 인식으로 파악한 세계를 의미하며, 의지로서의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한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물자체라고 칭하는데, 칸트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쇼펜하우어는 의지(충분근거율이 적용되기 전)의 세계라고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내가 이 책을 이해했다고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쇼펜하우어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우파니샤드'의 개념에서
완전하게 공감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경향성이 있듯이 상대방에게도 어쩔 수 없는 있기에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라는 개체에 구현된 의자나 나라는 개체에 구현된 의자가 결국은 하나이고,
너나 할거 없이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의해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음을 받아들이는것이는 것이 중요하다.
즉 나라는 개체에 매몰되지 않고, '그'라는 개체에 매몰되지 않는것
즉, 그와 나의 각각 의지가 구현되어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
그렇게 상대방을 받아들인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인류애를 가득 품고 현대사회를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왜 불쾌한가 ?
그렇지만 인간은 삶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나 ?
생에의 의지에는
생은 확실한 것이며
우리들이 이 생에의 의지로 충만되어 있는 한
아무리 죽음을 직면하더라도 우리들은 우리의 생존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개념과 논리를 20%정도 이해한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함께 살아가는 연민의 윤리, 다름을 인정하는 관계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았고,
내가 속해있는 이 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되어 따뜻하게 살아갈 용기를 가져본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