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냥 멋있어서 반항의 객기를 부리던 고교 시절부터 쭉 그랬다. 또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방황하는 청춘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좋았고, 왠지 모를 애잔함의 정서에 열광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 더 이상은 청춘이 아닌 나를 그에게 한번 더 데려다 준 것은 음악 그리고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나는 그의 음악과 LP에 대한 집착과 약간의 허영(?) 그리고 아날로그로 대표되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 격하게 공감한다.
"마음에 드는 레코드 재킷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있는 음악의 세계에, 또다른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물건의 형태에 너무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돼버렸으니 별수없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거의 의미 없는 편향의 집적에 지나지 않으니까." 라는 그의 얘기처럼 취향은 백인백색 다 다른 것이고 그 호불호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순 없으니 취향의 결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 아닐까. 그에 더해 그는 참 겸손하다. "그런 책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없을지도 모르죠' 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클래식을 애호하는 분이라면 책장을 넘기며 재킷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친밀감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추측한다(희망한다)." 고 적을 만큼 이 책의 효용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가끔 멍하니 앉아 레코드 재킷을 바라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그것만으로도 제법 평온함을 느끼는 그와 비슷한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하다.
음악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거리감을 느끼는 장르가 클래식이다보니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100곡의 클래식 중엔 잘 모르는 곡도 있고 너무나 사랑하는 곡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그 음악들을 들을 때마다 하루키의 감상이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음악적 취향도 좋았지만 레코드 자체를 살피는 섬세한 시선이나 소소한 감상평들이 편안하게 읽히는 가볍지만 공허하지 않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