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 인생은 어떠한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프로젝트 형식이 아니라, 매 순간 펼쳐지는 이야기와 같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풍요로움 그 자체’, ‘일상생활의 작은 경이로움의 진가’를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을 접하며,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보고 지나쳤던 미술 작품들, 그 예술의 가치와 진가가 특정인들의 고상함과 부를 북돋아 주는 ‘달나라’ 매개체가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보다 윤택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어떠한 시대 속에서 고뇌하던 작가들과 교감할 수 있는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동안 맥락을 읽지 못하고 단순하게 지나쳤던 그림들이 각 작가가 처한 상황과 배경을 이해한 뒤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반 고흐의 <별이 빚나는 밤>은 평시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던 고흐가, 고갱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더욱 심적으로 고립되면서, 정신이상 상태를 보이고, 결국 생 레미 요양원에 들어가 고뇌하며 창살 너머 보이는 밤 하늘과 상상 속 마을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밤 하늘은 거친 붓터치로 입체감 있고 다소 혼란스럽게 역동적으로 표현되었고, 밤 하늘의 별들은 고흐의 혼란스럽지만 답을 찾고자 하는 고흐의 희망과 염원을 담은 듯 보인다. 그저 야경이 아름다운 유명한 그림이라는 단편적인 감상에서 한 발짝 나아가, 가난한 농부로 태어나 한 평생을 그림 그리기에 헌신했으나,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만 겨우 팔고 가난하게 죽은 고흐라는 작가와 그가 귀를 자르면서까지 그 예민함과 감수성이 스스로를 망가뜨린 후에도 계속해서 수백여 점의 그림을 그리며 삶의 고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그의 그림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피카소와 같은 시대를 향유한 앙리 마티스의 역동적이고 자유로우며, 대담한 그림들도 인상깊었다. 그림을 통해 기쁨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마티스의 그림은, 틀에 갇혀 있는, 혹은 인생의 굴레에 갇힌 우리들의 마음과 정신을 잠시나마 자유롭게 놓아줌으로써 그가 펼친 다채로운 색감과 함께, 인생의 어느 한 역동적인 순간 속에 참여하게 만든다. 모마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각각 전시되어 있는 <춤>이라는 작품은, 본능에 따라 자유롭게 춤을 추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빙글빙글 숨차게 돌며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으로 초대받는 것만 같다. 이 책에서 소개한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는데, <밤을 새우는 사람들>, <작은 도시의 사무실> 등 창문을 매개체로 단순하게 풀어낸 작품들은 박제 동물을 보는 것만 같이,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지 않고,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않은 현대인들의 고독과 쓸쓸함, 삭막함을 투영하는 듯 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상을 보는 시각과 감정들이, 그림의 구도와 색감, 표현을 통해 시대를 거슬러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 바로 글과는 다른, 그림의 힘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마크 로스코의 추상주의적 작품, 단순한 색감을 섞어 질감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무거운 굴레, 마음, 죽음, 삶 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그러한 작가의 의도가 모마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어떤 것을 그렸기 때문에, 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것을 그렸기 때문에 유명하다는 단순한 해석이 아닌, 그 작가가 처한 상황, 시대적 배경, 의도 등이 어울어져 하나의 총체적 예술 작품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매 순간의 작은 감정과 경험으로 채워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와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