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보다는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세이가 나왔길래, 이건 50%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 남은 절반은 책 표지가 멋있어서 골랐다.
하루키의 세계관 속에는 늘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한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소설을 읽고 있으면
현실은 휘발되어 날아가 버리고 소설 속에 동화되어버린 날 발견하게 된다.
소설과 에세이를 둘 다 잘 쓰는 작가는 드물다고 한다.
소설이 재밌어서 에세이를 사서 읽었더니 실망했다는 경우도 있는데,
하루키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73세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취미 부자이다.
그는 한 가지에 관심이 생기면 아주 넓고 깊고, 그리고 즐겁게
그 일을 한다.
레코드를 모으는 게 취미인 작가가 60년 가까이 레코드숍을 들락거리며
부지런히 모은 레코드를 소개해 주는 책이다.
스스로가 '레코드에 집착이 있다.'라고 말한 거 치곤
레코드를 산 이유가 너무 제각각이다.
그는 레코드, 그중에서 클래식 레코드를 모은다.
체계적으로 모으기보다는 재킷이 멋있어서, 싸서
즉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사 모았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개된 레코드를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레코드판으로 들어본다는 것은 아니고
대 정보 홍수의 세대.
유튜브에는 없는 게 없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나는 클래식보다는 뉴에이지 쪽으로 더 흥미가 있지만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움에 덮여버린, 오래된 내 취향이 떠올랐다.
그 계기로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여러 개 들어 보았다.
그러면서 나도 용기가 생겼다.
' 나도 하루키처럼 연주단의 특색을 읽어내고, 그중에서 더 명확한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겠는걸? '
그리고, 책 읽는 시간보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 길어진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그 순간에는 나도 하루키 못지않은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전문가라는 표현보다, '라흐마니노프를 탐구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나도 60년을 한 가지 관심사에 몰두하고, 끈기 있게 쥐고 나간다면
하루키처럼 굉장한 컬렉션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가르칠 건 아니지만
멋지고 근사한 취미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