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말 고등학교때 부터 와타나베와 그의 친구 기즈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인 나오코는 절실한 사이이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와나타베의 절친한 친구 기즈키는 사회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적응하지 못해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된다. 이에 와타나베와 여자친구인 나오코는 엄청난 충격에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된다. 얼마후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도쿄에서 다시만나 어렵사리 애틋한 만남을 가지게 되지만 시간이 흘러 나오코와의 연락이 끊기고 각자 일상으로 복귀하여 지내게 된다. 어느날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이에 와타나베는 요양원을 찾아가는데 나오코에 사랑을 느끼게 되고, 요양원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도쿄의 와타나베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미도리라는 여자는 통통튀고, 유쾌한 매력의 소유자로 그의 일상에 스며드는데 두여성 사이를 오가는 와타나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나오코의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결국 기즈키의 예전생각에 나오코또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나오코의 자살소식에 다시 한번 와타나베는 엄청난 충격에 긴 여행을 가게 되고, 그의 도피와 방황을 그의 멘토가 되어준 레이코에 의해 마무리 하게 된다.
그는 현실에서의 도피를 마무리 하며 미도리에게 전화를 하며 끝을 맺는다.
노르웨이의 숲은 '상실'로 인한 돌파구를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호감과 욕구, 또 사랑이 관계를 만들어가지만 다시 또 찾아오는 상실로 인한 방황 기즈키의 죽음으로 나오코에게 찾아오는 상실, 이어지는 자기상실로 인한 죽음, 와타나베의 상실 이 순환고리에서 와타나베는 상실감을 딛고 일어서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게 우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을 보면 자주 드는 생각이 외설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1Q84에서도 그렇고, 성적인 것을 통해 무언가 의미부여를 하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부분이 썩 유쾌하지 만은 않다.
그래도 하루키만의 소설이 주는 느낌은 워낙 독특해서, 매력이 있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