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이후 최고의 ‘대중 과학 전도사’로 불린 브라이언 그린이 10여 년 만에 새 책을 썼다. 미국 현지에서는 2020년 출간되어 즉각 아마존 과학 분야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미 크게 화제된 바 있다. 미래엔 와이즈베리는 카이스트 출신 과학전문 번역가 박병철 박사에게 의뢰해 장장 1년여에 걸친 고된 번역작업 끝에 한국어판 《엔드 오브 타임》을 출간했다.
《엔드 오브 타임》은 그의 지난 책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 브라이언 그린 특유의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대중을 향해 강의하듯 특정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던 과거 저서들과 비교하면, 이번 책은 독백에 가깝다. 물리학자로서 연구와 탐구를 넘어선, 지난 10여 년간의 철학적 성찰이 느껴진다.
물론 책의 모든 문장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쓰였다. 다만 그 사고의 방향이 어떤 하나의 과학이론만을 향한 게 아니라 우주와 생명, 인간의 정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뻗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인류가 지금껏 설명해내기 위해 시도해온 수많은 과학적 미스터리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밝히면서도, 최선을 다해 문제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엔드 오브 타임》에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인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의 시공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하지만, 아주 우아하고 단순한 수학 법칙을 따른다. 그린은 이 법칙을 토대로 우주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초기의 혼돈 속에서 생명은 어떻게 태어났으며, 단명(短命)의 운명을 깨닫게 된 인간은 어떻게 모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가? 저자는 수많은 이야기와 신화, 종교, 창조적 표현, 그리고 과학을 통해 진실을 찾고 영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분석한다. 우주 만물은 언젠가 붕괴되어 사라질 운명이지만, 우리가 겪는 경이롭고 심오한 경험과 인간 스스로 창조한 아름다움 속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흔히 과학책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천상 스토리텔러인 과학자의 아름답고 평이하고 적확한 문장들이 그런 우려를 일거에 씻어버린다. 같은 물리학을 공부한 번역가의 번역도 훌륭하다. 양자역학이론을 비롯한 몇몇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들의 완급과 깊이 조절도 대중들의 이해도를 감안한 배려가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