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찬성과 에반 : 할머니와 단둘이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는 열 살 소년 노찬성이 길가에 버려진 노견 ‘에반’을 키우면서 시작된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병들고 지칠대로 지친 노견 에반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전단지를 오천 장 이상 돌리며 안락사 비용을 마련한 노찬성. 그러나, 생전 만져보지 못한 큰 돈 십 만원 앞에는 많은 유혹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찬성은 사만원을 에반의 안락사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고 선택을 바꾼다.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아닌 에반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보살펴주는 것이 낫겟지’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안락사 비용을 다른 곳에 쓴 것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괴로워하던 에반은 결국 어느 날, 스스로 차에 치여 죽는다. 열 살 소년이 버려진 개를 위해 전단지 알바를 한 것도 그렇고, 그깟 4만원 쓴 것에 대한 괴로움을 느끼는 열 살 소년을 보며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다. 책임은 본인의 능력이 전제되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반의 원래 견주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분명 열 살 노찬성보다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노찬성과 에반’은 우리사회의 빈곤으로 인해 소외된 계층, 유기견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좋은 작품인것 같다.
건너편: 취업난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청춘들, 노량진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빛날 순간을 바치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졌다. 저자는 수많은 청춘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저자가 느끼는 연민의 감정에 독자가 공감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작가는 우리가 삶을 살면서 놓치거나 외면하고 있는 문제들, 소외받는 이들의 아픔을 직시할 기회를 수천 개의 문장을 통해 마련해준다. 무릎을 탁 치게 할 만큼 시원하고, 적절한 표현으로 섬세한 감정, 민감한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풍경의 쓸모: 인간의 간사함, 그러나 그 간사함이 내게 너무도 친밀하고 익숙했기에 비난하기보다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남을 헐뜯어 미묘한 도덕적, 인격적 우월감을 느끼고, 자신이 씹어대던 타인의 결함이 곧 본인의 결함임을 눈치채지 못하는 한 인간상을 곽 교수라는 인물을 통해 잘 드러냈다. 뒤에서 누군가를 씹어대면서 면전에서는 웃는다. 나도 정중함을 가장해 조심스럽게 타인을 뒤에서 비난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분명 기분이 개운치는 않다. 내 스스로 내 인격을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삶이 그렇다. 내가 보내는 일상과 나의 내면의 온도가 상이할 때가 너무 많다.
바깥은 여름은 우리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치밀하게 다룬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내 양심이 많이 닳고 닳았음을 여실히 느꼈다. 한편으로는 내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