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은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특히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그 죽음은 개인사로 그치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암살이다. 그중에서도 독을 이용한 암살에는 알려지지 않은 뒷골목의 이야기가 무수히 담겨있다.
독살은 자연사로 위장할 수 있고 진범을 찾기 어려워 권력을 탐하거나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은 이들이 널리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상대의 음식에 독약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일은 힘이 세지 않은 여성이나 약자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거를 찾기도 힘들어 범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살해방식으로도 꼽혔다. 무엇보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했다.
이런 이유로 군주제가 성립된 이후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왕족이나 귀족, 유명 인사의 석연치 않은 죽음 뒤에는 어김없이 독살 의혹이 뒤따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조선 왕이 독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권력자들에 대한 독살은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독살 사건들은 당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여러 언어와 왕실 역사에 해박한 저자는 집요하리만큼 철저한 고증과 최신 법의학 지식을 토대로 세계사를 뒤흔든 독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지금껏 가려져 있었던 유럽 왕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면에 도사린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 보며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과정에서 독을 감별하고 해독제를 만든다며 야단법석을 떨던 사람들이 도리어 지저분한 생활환경, 사람 잡는 화장품, 어처구니없는 치료법 때문에 죽어갔다는 사실을 밝힌다.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궁전은 곳곳에 똥 무더기가 쌓여 있고, 계단마다 지린내가 코를 찌르며, 바닥에는 해충이 득시글했다. 예뻐지기 위해 화장품을 발랐던 여인들은 중금속에 중독돼 시름시름 앓았다. 의사들은 인간의 두개골을 약으로 쓰거나 머리에 죽은 새를 얹어두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했다.
욕망과 음모와 살인이 들끓었던 유럽 왕실의 속살도 그대로 보여준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러시아 황제 이반 4세, 영국 왕 에드워드 6세,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독살 의혹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유럽의 왕족과 귀족, 뛰어난 군사 지도자와 예술가, 왕의 정부(情婦)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독살 사례 17가지에 주목했다.
오늘날 범죄와 관련이 있거나 뜻밖의 사고를 당한 시신을 부검하듯이 과거 유럽에서도 누군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었을 때 사인을 규명하고 독살에 대한 소문을 잠재우고자 부검을 했다. 저자는 과거 검시 기록과 최신 법의학 지식, 정사와 야사를 균형 있게 분석한 자료, 그리고 탄탄한 논리와 역사적 상상력을 토대로 당대에 일어난 일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이를 통해 인간의 무지와 욕망이 빚어낸 독살 스캔들의 정체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는 무지에서 비롯된 유해환경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정치적 독살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적 암살 시도, 대낮에 버젓이 자행된 김정남 암살 사건 등을 소개하면서 독살 수법이 갈수록 정교하고 악랄한 행태를 보이며 구시대의 유물인 줄 알았던 정치적 독살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