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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계획 이야기2
5.0
  • 조회 386
  • 작성일 2022-06-24
  • 작성자 김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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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 여의도 건설과 시가지 형성과정이 흥미로웠다.

여의도공항과 관련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개발되기 이전의 여의섬 한강하류 용산마포 나루터에서 당인리 앞까지, 남쪽으로는 노량진 쪽에서 영화리까지, 한강흐름의 한복판에 넓게 퍼진 백사장이 있었다. 홍수 떄마다 거의 침수가 되었다가 홍수가 끝나면 수면 위로 노출되는 백사징 이었다. 원래의 넓이가 얼마나 되었는 지 지금은 알 수가 없지만 1880년 대에 일본 육군측량부가 측량한 지도를 보고 추측할 때 조선왕조시대 이 백사장의 넓이는 250~300만평 정도다. 이 넓은 백사장 안에 홍수에도 침수되지 않는 두 개의 섬이 었다. 두 섬 중에서 서강 쪽의 섬은 밤섬이었고 영등포 쪽의 섬은 여의섬이었다. 이 두 섬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조선왕조가 서울에 도읍을 정한 이후의 일이었다. 밤섬에 처음 종착한 사람은 배를 만드는 조선공이었다고 전해 진다. 그러나 그 후 밤섬에 거주한 사람들의 주된 생업은 양잠과 약초재배였다. 이 땅 안에서 행정구역이 크게 개편된 것은 1914년 이다. 밤섬은 마포구 서강동에 포함되었고 여의섬은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포함되었다.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에 간이비행장 건설이 착수된 것은 1916년 이다. 이때는 아직 무전시설을 비롯한 갖가지 계기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고 비행장 운영도 초보적인 단계였기 때문에 각종 부대시설은 필요하지 않았다. 여의도 간이비행장은 1916년 활주로 공사와 격납고 건축공사를 하고 최초의 비행장이 되었다. 여의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20년이다. 여의도 초기의 초지 활주로와 빈약한 시설에서 정식 비행장으로 모습을 바끈 것은 1929년 이다. 그후로 만주 대련-여의도-도쿄 항공노선이 취항되어 한일간 여객수송이 개시되었다. 이때부터 여의도비행장은 군과 민간이 공동으로 이요하게 되었고 태평장 전쟁중에는 글라이딩 훈련장이었다. 광복 후 여의도는 미국공군기지의 하나가 되었다. 여의도는 한국공군의 발상지 였다. 1948년 당시의 국방경비대에 항공부대가 창설되면서 여의도는 비행기 없는 비행부대의 지상훈련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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