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하루키 책이 관통하는 의미는 '상실', '만남'. '삶의 지속'이다.
한국에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었던 노르웨이의 숲을 나는 2번 읽었다.
상실의 시대로 한번, 노르웨이 숲으로 한번
제목이 달랐던것 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도 사뭇 달랐었던것 같다.
아무런 상실을 몰랐던 첫번째 독서에서는 나는 그저 야한책, 우울한척 분위기 잡는책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살아보면서, 조금 더 상실해 보면서 노르웨이 숲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던 책은
처음과는 다른 조금은 마음에 와닿는 책으로 다가왔다.
하루키의 보통의 책들이 그러하듯 노르웨이 숲은 주인공의 상실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첫 연애 상대였던 여자친구를 떠나보내는 상실을 겪게 된다.
그 후로는 공허한 만남과 일상들이 지속된다.
우리의 상실에 의해 느껴진 빈자리는 새로운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채워진다.
소설 속 주인공 또한 연상의 여인을 만나며 상실에서 벗어나고 조금 더 삶을 지속할 힘을 얻게된다.
사람을 통해 사람의 상실을 치유해 나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이.
다소 우울한 분위기의 책은 처음 읽었을때와 달리 나에게 묘한 희망감을 주었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를 상실했었다. 나를 더 슬프게 했던 것은, 상실했다는 것보다 그 사실에 크게 슬퍼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즉 사람의 부재보다, 내 감정의 상실이 더 크게 다가왔었던 것 같다.
날짜도 절묘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사유는 상대방의 귀책
그 쓸쓸했던 크리스마스 이브를 나는 묘하게 우울하지만 묘하게 희망적인 이 책을 통해 극복했었다.
급속도로 책에 빨려들어갔었고, 이 책이 이렇게 재밌었나 조금 놀랐었고. 마지막 페이지로 갈수록 묘한 희망이 부풀러 올랐다.
그리고 완독을 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짝하고 박수를 쳤다.
그후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두번의 독서 이후에도 이 책을 다시 선택하게 된것은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짝'하고 박수를 쳤던 그 때가 자꾸 기억나기 때문이다. 책을 보다 일어나 박수를 쳤던 경험 그다지 엄청난 명작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나를 일으켰던 그 힘을 다시 느껴보게 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