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행복과 불행을 세세히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나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날보다 불행했던 날에 더 큰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무수히 겪고, 외적인 것 외에 내적이고 더 실질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을 정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내 인생은 그다지 불쌍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나를 덮친 외적인 운명이, 모두에게 그렇듯 피할 수 없고 신에게 달린 일이라면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만의 고유한 작품이었다.
인간은 수많은 것을 두려워한다. 통증, 다른 사람의 평가, 자기 자신의 마음, 잠들기, 잠에서 깨기, 외로움, 추위, 광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면이자 위장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큰 믿음을 경험하고 운명을 철저히 믿어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지상의 법칙을 버리고 우주에 자신을 던져 전체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이다.
절제의 습관은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능력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능력은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현대 생활이 왜곡하고 없애버린 적당한 명랑함, 사랑, 서정성이 필요하다. 주로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그런 작은 기쁨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상의 곳곳에 무수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에 파묻혀 사는 수많은 사람의 둔감한 감성으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인간이 자연의 변덕이자 잔혹한 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너무 중요한 존재로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삶은 새나 개미의 삶보다 유난히 더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수월하고 아름답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하지 말고, 그런 절망을 몸으로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추함과 무의미함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무의미함에 맞설 수 있으며 의미를 찾으려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