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어령 선생님의 '메멘토 모리'를 읽었습니다. 암으로 투병하시던 이어령 선생님이 지난 2월 26일 별세하였죠. 돌아가시기 전에 읽었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조만간 '메멘토 모리'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되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24 개의 질문에 대한, 이어령 선생님의 답을 수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전에 읽었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이 있어서 읽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종교, 인간 죽음에 관한 질문을 향해 이어령 선생님은 역시 그 찬란히 빛나는 지성을 드러내셨더군요. 문학자이자 기호론의 창시자답게 말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정말이 기발한 수사로 이끌어 주시는 내용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동시에 노년에 이르러 기독교 신자가 되신 선생님의 신이란 존재에 대한 생각과 통찰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선생님은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인간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는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와, 생명 가치의 유일성, 그리고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큰 시련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불멸의 존재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저 주저앉아 있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통해, 팬데믹 이후에 오히려 인간은 또 이 위기를 극복하고 모든 면에서 발전할 것이라 단언합니다. 팬데믹 패러독스(pandemic paradox)인 것입니다.
신을 부정하는 것 같았던 과학도 사실은 발전할수록 오히려 신을 증명하는 모습입니다. 선생님은 신성 부정의 대표격인 진화론을 예로 듭니다. 진화론은 초기에 서로 먹고 먹히는 포식의 관계인 '포식주의'를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포주와 숙주의 기생 관계로 설명한 패러사이티즘(parasitism)으로 발전하였고, 그것은 다시 심바이오시스(symbiosis)라는 공생이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진화론이 발전하여 도달한 것은 공생이며, 이것이 생물학적 전략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도우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와 동일합니다. 마치 빙둘러 하나의 이론으로 정리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인간이 만든 문명 및 과학과 종교의 차이를 이렇게 다르게도 설명합니다. 문명 및 과학이 지성의 영역에 놓여있다면, 종교는 영성의 영역에 놓여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문명이 발전할수록 종교와 과학의 차이가 점점 좁혀들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이 점점 발전할수록 과학자들은 신의 영역을 만나게 됩니다. 과학적 잣대에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이른바 섬씽 그레이트( something great)를 경험하게 된다고 이야기하죠. 여기서 선생님은 하나의 통찰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무신론자가 되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신의 존재를 느낀다는 것이죠. 얼마나 재미있는 역설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종교계 특히 기독교는 오만에 차있습니다.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공생과 사랑으로 무장하기는커녕,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저희들만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합니다. 배타적으로 광신적인 성향을 띠는 것에 대해 선생님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광신주의(fanaticism)의 공통점은 절대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라고 합니다. 바로 이점을 항상 유념해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선생님은 주장하죠. 오늘날 기독교인의 숫자가 늘어나는 유일한 나라인 한국의 기독교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기독교인의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선생님은 탄식합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마치 사마리아인처럼 말이죠. 반면 기독교를 믿지만 부유한 이들이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가난하고 부자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는 천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하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와 신을 증명하려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과 삶은 같은 것이라는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죽음과 발생은 하나의 개념이며 또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궁에서 무덤까지는 영어로 Womb와 Tomb 한 글자 차이라는 것이죠. 죽음이 생명과 동일한 것 외에 또 다른 가르침을 줍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은 우리에게 모두가 평등함을 일깨워 줍니다. 또 죽음은 우리를 성찰하게 하여 착해지도록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생명에 대해 잘 알게 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멘토 모리 처럼 말이죠.
이 책을 읽고 언어와 종교, 신과 과학에 대한 선생님의 심오한 지성을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느끼게 됩니다. 이런 위대한 지성을 앞으로 볼 수 없다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죽음과 삶은 하나인 것이니, 아쉬움에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생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찬란하게 비출 수 있다면, 선생님은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이어령의 메멘토 모리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