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시인과 그냥 스쳐지나기만 했던 싯구들은 찬찬히 읽어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정호승 시인들의 시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술한잔-]
인생을 돌이켜보면 정말 인생은 술한잔 사주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사줬지만 만취해서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재미나고 인생을 반추해볼 수 있는 좋은 시다. 인생이 술한잔 사주지 않으면 내자신을 내가 위로해 내가 내돈주고 사먹는 자작술도 어찌 나쁘지 않으리오.
또한 윤동주 시인의 시들도 다시한번 새롭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항상 어찌 저리 쉽고 편하고 간단한 단어들로 주옥같은 시들을 쓰셨는지
천부적 재능이 깃든 분이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아픈 상황에서 그가 말하듯 쉽게 쓰여진 시가 아닌것이 아닌가. 나이가 들고 장년이 되어서 윤시인의 시들을 다시 살펴보니 가슴에 와 닿는 시는 자화상이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니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나이가 먹어 장년이 되어버니 내게 딱 맞는 시다. 갈수록 주체성이 뚜렷해지고 가치관이 확고해 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따라 흐릇듯 흔들리는 마음과 이제 복잡하고 힘든 일은 가능한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추억처럼 사나이가 우물속에 비추는데 어쩔 떄는 내자신이 미워지고 어쩔 때는 인생사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내자신이 불쌍하고 자화상이란 시가 딱 들어맞는다.
이번 시집에서 도종환 시인의 발견은 더욱 놀랍다. 이분이 이렇게 깊이 있고 멋진 시를 쓰셨나 돌이켜본다. 정치에 투신하여 활동하느라 많이 고생하셨을 거 같다. 시인과 정치인은 상반되지 않을까. 개인의 인생사이지만 정치로 가지 않았으면 더 존경받지 않았을까.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벗 하나 있었으면-}
멋진 시들과 함께하는 초록의 초여름이어 행복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