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좋아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 사고는 배길 수 없는 책이다.
하루키가 어떤 곡들을 좋아하고 어떤 앨범들을 모았나 궁금했는데,
자신의 취향은 중구난방이라고 밝히며 LP자랑이 시작되었다.
그런 책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없을지도 모르죠'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클래식을 애호하는 분이라면 책장을 넘기며 재킷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친밀감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추측한다.(희망한다.)
- 프롤로그 中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의 유명한 작가들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부잣집 도련님이라(실제로 간사이 지방에서 굉장히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다.)
글에서도 그런 경제적, 심리적 여유로움이 드러난다고 하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기에서도 그의 여유가 전체적으로 나타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하루키는 대작가님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300페이지가 넘는 하루키의 잡다한 클래식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책이지만,
음반에 대한 감상과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이루어진 책이라 부담 없이 읽기 좋았다.
저자가 처음에 말했듯이, 이 책은 개인적 취미와 기호에 치우친 책이지 체계적, 실용적인 목적의 책이 아니기 때문에
매 음반마다 느꼈던 감정이나 아쉬운 부분이 마치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
클래식 뿐만 아니라 저자와의 친밀감도 훨씬 높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꼭 LP를 모으는 사람,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작곡가며, 장조 단조며, 연주자며 다 외울 수는 없으니 '이런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유니버설뮤직 유툽에서 책에 실린 음반들을 업로드 해주었는데, (무려 4시간반)
이 책을 읽으면서, 혹은 노동요로 들어도 좋을 것 같다.
https://youtu.be/zz2JRoNp0og
마지막으로 아래는 내가 제일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이다.
어쩌면 나는 물건의 형태에 너무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별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거의 의미 없는 편향적 집적에 지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