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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5.0
  • 조회 390
  • 작성일 2022-04-21
  • 작성자 백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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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는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이다. 그가 마흔다섯의 나이에 생을 마쳤을 때 그가 갖고 있던 커다란 궤짝 안에서 수많은 원고들이 발견되었다. 그중에 불안의 서라 이름 붙여진 원고들과 페소아 연구자들이 함께 어울릴만하다고 생각해 추린 다른 원고들을 더해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페소아는 1914년 이전부터 <불안의 서>를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측되지만 연구자들의 기나긴 작업을 거쳐 사후 50년이 흐른 1982년에 첫 출간되었다. 이 책이 한 번에 집필을 한 것이 아니라 사후 기록을 모은 것이라 진짜 누구 메모장을 보는듯한 기분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동정도 생긴다. 이것이 과연 이 작가가 생각한 삶이었나. 아니면 불가피하게 얻게 된 질병 같은 것인가. 뭐가 됐든 행복하게 본인의 의지였으면 좋겠다.

<불안의 서>는 에세이로 분류됐지만 소아레스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니 소설이라고 분류할 수도 있을 테다. 다만 스토리가 없고 페소아가 남긴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페소아의 페르소나인 소아레스를 통해 삶과 인간의 비애, 기저에 흐르는 완벽한 글쓰기와 훌륭한 작품 창조에 관한 열망과 고민, 좌절감, 불안에 침잠한 흔적들은 저자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생전에 페소아는 무명의 작가였다. 쓰고 싶은 열망이 컸던 작가가 온갖 심상 의식 사색 관조 다양한 층위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기록한 것이다. 아름답고 지루하고 솔직하고 슬프고 아련하고 권태감이 밀려오기도 하는 글들의 향연이다.

책의 내용이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닌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길게는 4페이지 짧게는 몇줄정도의 글들이 써져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고, 글의 의미를 곱씹다보면 끝없는 우울함과 불안함이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럼에도 계속 책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은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울함을 사고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살기위한 마지막 수단처럼 토해내는 문장 속에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불안의 서>는 내가 갖지 못한 섬세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작가는 그 섬세함으로 인해 몇 배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겠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삶의 결이다. 스치는 바람에도 힘들고 괴로웠을 작가 덕분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기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객관화의 첫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분리해 내는 것, 둘째는 자신의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성과 침몰하는 감성을 분리해 내는 것, 셋째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해 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어둠속에서 개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단히 내면을 성찰해 내는 일이다.

이 책은 소아레스를 둘러싸고는 있으나 그의 내면으로는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는 세계, 그리고 보조회계원으로서의 피상적 일상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관조적으로 기술한 외면이자 내면의 일기다. 때로는 길고 때로는 극히 짧은 메모와 회고, 인상, 사색과 명상 그리고 환상을 기록한 언어는 시적인 은유로 가득하다. 일기는 삶의 의미와 인간의 운명, 그리고 영혼의 비밀을 묻는 비탄의 노래처럼 들린다. 리스본의 장소들, 리스본의 풍경들이 많은 경우 그의 관찰과 관조의 대상이 된다. 대표적으로 금 세공사들의 거리인 도라도레스는 소아레스가 사는 곳이면서 동시에 전세계이자 삶 전체를 상징한다.

'불안'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존재적 문제보다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리고 지금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화자로 증류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지칭한다. 그러나 불안의 다른 형태들이 작품에 침범하기 시작하고 이내 예기치 않은 변화를 일으킨다. 수많은 파편적 텍스트, 스케치들과 아포리즘이 그 어떤 줄거리도 구성하지 않은 채, 오직 의식의 연상을 따라 진행되는 이 책은 열린 형식의 현대적 작품이다. 소아레스-페소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명상 그리고 성찰에는 인류의 보편성과 한 개인의 특성이 모두 반영되는데,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자아의 비밀에 대한 질문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된 테마를 이룬다.

역자 배수아 씨가 <불안의 서>는 결국 고독하게 태어난 인간의 운명에 대해 노래하고 저항하고 있다고 설명을 덧붙여주었던 게 그나마 이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 힌트가 되었다. <불안의 서>를 완독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을까. 빈약한 사유와 허약한 문장을 돌봐야 하는 나는 부디 한 뼘이라도 더 섬세해지기를 기도하며 페소아를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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