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념하기 개인적인 기쁨과 사회적인 번영, 이것만 해도 매무 훌륭하다. 그러나 전념하기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또 있다.
1953년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황량한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곳은 공기가 건조하고, 바람이 매섭고, 풀이 거친 척박한 땅이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땅의 모습을 따라갔다. 이웃 사이에는 경쟁의식만 가득했고, 서로 헐뜯고, 빼앗고, 싸우기 바빴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가 없어서 땅이 척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철로 된 막대를 들고 황량한 땅으로 나가 구멍을 내고 도토리를 심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같이 그 일을 반복했고, 3년이 흐르는 동안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중 2만 개가 싹을 틔웠고,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랐다. 단지 나무만 자란 것이 아니었다. 숲이 생기자 한때 말라붙었던 개울에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숲이 저절로 생겼다며 신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적은,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어느 양치기의 꾸준함이 일으킨 일이었다. 이 단편 소설은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에 의해 동명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거듭났다. 그는 불투명 셀 위에 색연필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서 했다고 한다. 작업 기간만 5년 6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마저 극찬을 보내는 걸작이 되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 그리고 이야기 밖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바꾼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한 사람은 기적을 이루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전설을 만들었다. 그 기적과 전설의 원동력을 설명하는 책이 바로 『전념』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꾼 수많은 영웅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영웅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전념』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무한 탐색 모드를 권장한다. 혹시나 놓칠지 모를 기회와 가능성을 위해 항상 선택을 열어두라고 말한다.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진득하게 작품을 감상하지 않고, 스낵을 즐기듯 싸구려 정보를 소비한다. 때로는 어떤 스낵을 선택할지도 정하지 못하고, 스크롤만 내리다가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한 탐색모드의 장점,- 큰 위험 없이 재밌다. 융통성이 있고,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움은 늘 짜릿하고 어느 시점까지는 끝내준다.
SNS는 FOMO증후군을 조장하며, 새로운 경험을 충동질한다.* FOMO('Fear Of Missing Out')증후군 :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경험을 나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무한 탐색모드의 단점, 결정을 마비시킨다. 융통성은 오히려 행복을 방해할 때가 많다.(언제든지 그만둘수 있는 능력, 마음껏 떠날 수 있는 능력 등),아노미상태 : 지나치게 쿨한 상태.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주는 허전함.
사람은 지나치게 구속될 때 자살하기도하지만, 반대로 공동체가 나를 얽매지 않을때 자살하기도한다.피상적인 삶으로 전락할 수 있다.
해방될 것인가 헌신할 것인가. 허무주의냐 근본주의냐. 그 림보 속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새로운 것은 늘 신선하지만, 흩뿌려지기 너무나 쉽다. 반면, 지나친 신념은 몰락의 전조이다.(조선의 유교정신이 새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듯)
다만, 뭔가에 전념할 수 있는 인간은 안정되고 행복하다. 결국에는 믿음의 문제다. 헌신할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으로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뛰어내려보자. 너무 거창한 청사진을 그리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 된다.
명예보다는 무관심이 도덕성의 기준이되고, 기술, 신념, 공동체에 꾸준히 전념하기 보다 경력을 쌓고 출세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
돈은 기존의 가치를 더욱 액체화시킨다. 누군가의 수고와 경험을 돈으로 매기고, 사랑과 우정마저 효율로 전락시킨다. 이런 문화에 대해,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몰두라는 반문화 운동으로 저항하는 데이비스의 주장에 납득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