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은 비주류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작가는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와 부상당한 경주마, 그리고 사회가 규정하는 범주에서 벗어난 자매를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작품에서 이들은 동정 받거나 시혜적으로 관찰당하는 대상이 아닌, 이러한 삶도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로 나타난다.
작가는 이들의 결집을 통해 사회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디스토피아는 여전하다. 다만 극 중 캐릭터들은 각자의 사정을 끌어안고 한 발짝 나아가려는 시도를 한다. 서로의 모든 것을 껴안아 줄 수는 없지만 기꺼이 동행한다.
이들은 현실적이지만 모든 것에 냉소적이지 않다. 어떤 삶이든 남아있는 가치가 있으므로.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내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은혜는 퇴출 직전의 경주마 투데이를 두고 그렇게 말한다. 은혜에게 말의 부상을 낫게 하는 능력은 없지만, 그럼에도 생과 죽음을 끝까지 응시하겠다고 다짐한다.
작가가 <천 개의 파랑>으로 보여준 그림도 이와 결이 같다. 천천히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속에 남는 글>
"인간은 함께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사는 건 아니에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 뿐 모두가 섞일 수 없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에요>"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 이에요 살아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이해 받기를 포기한다는 건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졌다. 관계에 기대를 설지 않기 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다."
"세명이서 사는 집이지만 각 시간대 별로 1인분의 소음만 발생하는 곳이었다. 함께 있지만 맞물리지 않는 각자의 시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균열이 생기며 서로에게 스며든 소음이 서로의 시간을 맞춰준 거였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