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공지사항 FAQ QnA
  • New Arrival
  • BestBooks
  • Category
  • Book Cafe
  • My Books
  • 후기공유
  • 읽고 싶은 책 요청
무가와 천황
5.0
  • 조회 391
  • 작성일 2022-05-23
  • 작성자 정진구
0 0
12세기 말에 가마쿠라막부가 성립되자, 천황이 중심이 된 조정과 장군이 중심인 막부가 병존하는 정치체제가 등장하였다. 천황과 귀족들이 구성하는 조직을 공가라고 부르고 장군과 각급 무사들이 결집하여 형성된 조적을 무가라고 부른다. 이후 700년 정도 조정과 막부, 즉 공가와 무가가 공존한 사실은 일본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일본 사회에서 천황 및 천황제는 논란도 많고 이해하기도 힘든 면이 없지 않다. 천황이라는 호칭은 7세기경부터 사용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혈통적으로도 6세기 이후 현재까지 15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천황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가 깊은 왕가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가마쿠라/무로마치/에도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천황제가 존속할 수 있었는지는 많은 학자가궁금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권위와 권력, 성속에 걸친 서임권, 황위 결정권, 외교권 등의 몇 가지 개념을 통하여 무가 권력과 길항하면서 천황이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다나카 요시나리나 이 책의 저자인 이마타니 아키라 등은 요시미쓰가 천황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를 주창하였다. 요시미쓰는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인 히노 야스코를 고코마쓰 천황의 준모로 세우면서, 여원이라는 칭호도 받게 하였다. 여원이란 태황태후, 황태후, 태후 또는 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여성에게 내리는 칭호로 헤이안시대 중기부터 시작되었다. 야스코가 천황의 준모가 됨으로써 자신도 천황의 준부가 된 셈이다.
또한 천황가가 가지고 있던 제사권과 서임권 등의 여러 권력을 스스로 장악하였으며, 궁궐에 들어갈 때나 사사에 참배할 때는 상황 즉 퇴위한 천황과 동등하게 예우하도록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요시미쓰가 장군직과 태정대신직을 사임하고 출가한 후에 기타야마다이를 거처로 사용하였다. 이곳으로 고코마쓰 천황을 맞아들였을 때, 천황이나 상황이 쓸 수 있는 테두리에 다양한 색채로 장식한 깔개를 사용하였다. 또한 자신의 둘째 아들 요시쓰구의 성인식을 궁중에서 그것도 친왕에 준하는 의식으로 거행하였다.
등록
도서 대출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취소 확인
알림
내용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