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간의 쉼표」는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손글씨 숫자와 그림, 시구가 365일 달력 형식으로 만들어진 시집이다. 긴 시를 한 편 싣는다기보다 짧은 시구를 한 두 소절 정도 인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하루 중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을 준다. 특정 연도를 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해 곁에 두고 삶의 쉼표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시구의 감성에 깊게 빠져들 수 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꿈은 화가였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만난 뒤 시인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60여년 간 시를 써왔지만, 끝없이(여전히) 시인을 꿈꾸며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본 시집은 그러한 작가의 삶을 단순하면서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글로만 시를 접하는 것과는 다르게, 작가가 꾸며놓은 그림의 감정에 빠져들며 시를 읽음으로써 조금 더 작가가 의도한 작품의 뜻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머리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전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빌려서 씁니다. 하지만 빌려서 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중략) 열심히, 급하게 살기 위해서는 천천히가 필요하고 때로는 휴식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은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급하고, 빠르게 살고 있다. 작가는 그러한 현대인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또 그 선물을 통해 1년이, 일생이 성공과 보람과 기쁨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시간은 평등하면서도 냉정하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지위로 태어났건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반면, 누가 어떤 상황에 있건 관계없이 시간은 쉬지 않고 냉정하게 한 방향으로 멈춤 없이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고, 밀도 있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시집은 그러한 밀도 있고 의미 있는 시간 사용법이 역설적이게도 ‘쉬어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지쳐 있는 자신을 외면한 채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고 본인을 뒤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말이다.
얼마 전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에서 EBS 캐릭터 펭수가 서울대 의과대학의 면접을 보는 장면을 보았다. 면접관으로 들어오신 교수님은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셨고, 펭수는 “때로는 불가능을 마주해야 하는 의사도 힘들 것 같다. 그 때마다 의사는 아픔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좋은 의사는 자신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건강한 의사라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을 했다. 이러한 펭수의 답변은 본 시집을 통해 작가가 전달해주고 싶은 바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 목표를 향해 달리다 보면, 여러 번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서 많은 사람들은 고민 없이 쉽게 자기 자신부터 포기하는 법을 배운다. 작가가 말하고, 펭수가 전달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어루만져줄 수 있고, 스스로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목표를 건전하게 이루는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선택의 순간에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잠시 ‘쉬어감’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시집은 탁상형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자신의 공간 어디에나 두기 좋다. 많은 사람들이 여유로움을 자기 공간에 두고, 자신을 먼저 어루만져주는 삶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감명 깊게 보았던 몇 가지 시구를 공유하며 독후감을 마치도록 하겠다.
「2월 1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2월 26일」 화분에 물을 많이 주면 꽃이 시들고 사랑도 지치면 사람이 떠난다. 말로는 그리 하면서.
「7월 31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8월 9일」 날마다 봐도 좋은 바다. 날마다 만나도 정겨운 너. 바다 같은 사람. 참 좋은 내게는 너.
「10월 16일」 꿈꾼 요 며칠. 허둥대며 살았네. 흰구름 밟고.
「12월 25일」 하늘의 꽃처럼. 땅 위의 별처럼. 내게는 바로 너. 가슴속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