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중력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간에 관한 이야기!
시간에 관한 우주의 거대한 이야기가 온전히 담겨 있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세 번째 책으로,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이곳에서 경험하는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다른 것일까?’, ‘왜 과거는 떠올릴 수 있고 미래는 떠올릴 수 없을까?’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담고 있다.
1부에서는 지금까지 현대 물리학이 시간에 대해 알아낸 것을 요약했다. 어디서든 동일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사건들, 과거는 이미 정해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상식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낱낱이 드러낸다. 2부에서는 시간이 없는 세상으로 떠난다.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 인간의 문법에만 존재하는 과거-현재-미래, 시간이라는 변수가 없는 세상…. 이제 공간과 시간은 세상을 담는 틀이나 용기의 형태를 취하지 않게 된다.
3부에서는 1부와 2부에서 파괴한 시간을 되돌려 그 원천을 다시 찾고 이 긴 여행의 도착점을 우리 자신, 나라는 존재로 하여 돌아온다. 뉴턴에 의해 근대 물리학이 등장한 이래로 물리학의 발전이 우리의 시간관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까지 이야기하는 이 책은 일종의 시간 역사서이기도 한데, 여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새로운 양자중력 이론의 도입을 통해 지금까지의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킨다.
1.
고장이 난 넌 서랍을 뒤적거리며
잠을 청할 약을 꺼내고
한탄을 하네 창밖은 너무나 밝다고
연락이 없던 시간은 나를 찾아와
무거워진 귀를 잡고서
얘기를 하네 밖에서 날 기다린다고
2.
저물어가는 머릿속엔 오로지
서성거리는 유령이 되어
가늘하게 나를 감싸네
흐르지 않던 계절은 나를 배신해
손을 흔든채 표정을 바꿔
옷을 훔쳐 나를 감싸네
3.
머뭇거리다 안개가 되어 버리고
탁류 위에 일렁거리며
사진을 꺼내 입에 넣어 배를 쳐다보네
무거워진 넌 말을 잃어버린체
어두워진 창문을보며
입을 벌리네 비틀거리는 소리를 내며
4.
저물어가는 머릿속엔 오로지
서성거리는 유령이 되어
가늘하게 나를 감싸네
흐르지 않던 계절은 나를 배신해
손을 흔든채 표정을 바꿔
옷을 훔쳐 나를 감싸네
사진은 과거의 흔적이자 기억이다. 행복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사진을 꺼내들지만, 과거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 입에 넣는다. 슬프다. 그러나 이것이 더욱 슬픈 이유는 바로 앞 절 때문이다. 활기 없이 저무는 머릿속에 서성거리는 과거의 기억, 거칠게 분출하는 괴로움. 하지만 여전히 과거는 바라볼 수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단순한 반복은 아니다. 무언가 바뀌었다. 더 이상 창밖은 밝지 않다. '너'에게만 국한되었던 어둠은 이미 '너'를 잠식해버렸고 넘쳐 흐른다. 슬픔에 목이 매어 한탄이라는 말조차 잃어버렸다. 1절에서 무심하게 반복되었던 기타와 드럼 소리도 사라졌다.
4절로 넘어갈 때, 이제는 1절과 2절 사이에 있었던 '명상'의 허밍조차 필요없다. 곧바로 괴로움에 빠져든다. 그래서 4절은 2절보다 더욱 처절하다. 2절 후 곧바로 사운드가 침착해진 것과 달리 4절 후에는 비극적인 몸부림이 계속된다.
몸부림이 끝난 후 전쟁터에는 불편하게 끽끽대는 기타 소리만이 남아있다. '너', 아니 '나'는 투쟁에서 처절하게 불타 무너져버렸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의 저자 카를로 로벨리의 최신작이다.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로서 과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는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통합하는 이론인 양자중력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되기 위한 다른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양자중력 또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물리학계는 여러 방면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세계적으로 과학부인주의가 만연해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형태를 보이는 여러 사상의 발현으로 과학 자체가 부정되고 있다. 게다가 한 세기가 다 되도록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지 못하여 난관에 봉착했다. 과학은 통합의 역사다. 여러 이론을 하나의 포괄적 이론으로 묶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실험으로 교차 검증이 완료된 경우에만 과학계에서는 '법칙'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통합을 다루는 이론들은 기술의 한계로 인해 실험 설계가 어렵다.
이와 같은 이유로 21세기에 나온 물리학 서적들은 과학 서적이라기보단 철학 서적에 가까운 것 같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도 중반 이후부터는 철학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 즉, 질서에서 혼란으로 전개되는 우주를 객관적으로만 보려는 물리학의 관점에 경종을 울린다. 우주가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기에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 주관성은 견제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견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현재는 지극히 내 기준에서의 현재지(현재는 주관적으로 바라봐도 과거가 될 수밖에 없지만 편의상 넘어가기로 하자.) 우주 시점으로 바라봤을 때 현재의 기준은 존재할 수 없다. 10만 광년 떨어진 별의 빛이 나에게 다다랐을 때 그 모습은 나에겐 현재지만 그 별에게 있어서는 머나먼 과거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주관적으로 '시간이 흐른다'라고 하고 지금 이 순간이 지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라고 인지하는 이유는 진화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로벨리의 주장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시간도 TV 화면의 프레임처럼 양자 단위로 혼란을 향해 붕괴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인지하여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생명체가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우리가 시간의 화살 형태로 인지하여 명칭을 붙이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한 우주와의 상호 작용에 이 방법이 자연 선택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창조한 단어에 항상 지배되어 생각이 편협해 지지 않았는가. 단어와 직관에 의존하는 극단적 주관성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가 세상과 상호 작용하기 위해 인지하는 방식이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극단적 객관성 또한 벗어나 보자. 궁극 이론인 TOE(Theory Of Everything)는 Theory Of Equilibrium 일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이 균형 아니겠는가.
- 한 줄 평
때론 염세주의자가 부럽다.
2. 기억에 남는 문장
p33 굴러가는 공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나는 이 영상이 정방향으로 재생되고 있는지 역방향으로 재생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상에서 공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면 정방향으로 재생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역방향으로 재생하면 멈춰 있던 공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공이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은 마찰 때문이고, 이 마찰이 열을 생산한다. 그리고 열이 있는 곳에서만 과거와 미래가 구분된다.
p105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p155 우리 주변의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장대한 특징이 바로 회전이다. 그런데 정말 이 회전이 우주의 특징일까? 아니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우주를 연구했고, 결국 하늘의 순환에 대해 알게 되었다. 회전하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이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주의 신비로운 역동성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의 독특한 이동 방식에서 기인한 관점 효과 때문이다.
시간의 화살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는 우리가 우주와 상호 작용을 하는 특별한 방식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양상들 가운데 일부의 특별한 집합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 집합'이 시간에 맞춰져 있다. (무작위 배열의 카드나 주사위처럼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낮은 엔트로피로 인지)
p161 공간과 시간, 주체의 관점을 무시하고 순전히 '외부로부터' 세상을 설명한다면, 수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겠지만 세상의 중요한 어떤 측면들은 간과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p176 기억, 원인, 결과, 흐름, 과거의 확정적 본성 그리고 미래의 비결정성은 우리가 통계적 사실의 결과에 이름을 부여한 것일 뿐, 우주의 과거 상태는 있음직하지 않다.
p195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