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 표류기'는 크게 ‘표류기(漂流記)’와 ‘조선 왕국기(朝鮮王國記)’로 구성 되어 있는데 ‘표류기’는 네덜란드를 떠난 이후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거쳐 다시 귀국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지이며, 난파 경위, 조선에 표박한 이후 하멜 일행이 겪은 체험과 감상이 연대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왕국기’는 조선의 지리, 풍토, 산물, 정치, 군사, 형법 제도, 종교, 교육, 교역 등 하멜이 조선에서 체류하면서 보고 들은 조선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기록한 것이다.
1653년 (효종 5년) 헨드릭 하멜을 비롯한 선원 36명을 싣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던 네델란드 상선 스페르베르호는 풍랑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좌초하고 만다. 이들은 제주 감영에 억류되어 있던 중 탈출을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이듬해 한양으로 압송된다.
한양에서는 1626년 비슷한 경로로 제주도에 표착하였다가 나중에는 조선에 귀화하여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화포 만드는 일에 종사하딘 박연(원명:안 야네스 벨테브레브)의 통역으로 국왕을 호위하는 부대원으로서 체류는 허락받았지만 본국으로의 송환은 금지된 상태였다. 이들은 두 번째 탈출을 시도한다. 즉 조선에 온 청나라 사신에게 호소하여 국외로 탈출하고자 하였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또 실패하고 만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들을 안착시키려고 상당수를 조선 색시를 주어 같이 살게 한다. 효종 승하 후(1659년) 현종 1-3년간 밀어닥친 대 기근으로 이들은 강진, 여수 등지로 분산된다. 그 후 조정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이들 중 하멜을 비롯한 8명이 목선을 마련하여 1666년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화란 상관 데지마로 탈출한다. 그 후 동인도 바타비아를 거쳐 본국으로 귀환한다. 이때 하멜이 쓴 항해 일지가 유명한 하멜 표류기이다.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 1653년은 효종 5년이고 청에서는 홍타이지의 뒤를 이은 순치제 때이고 왜는 에도막부의 4대 쇼군 도꾸가와 이에쓰나 때이다. 즉 청이나 왜나 새로이 건국되어 나라의 기틀이 안정되어 융성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돌이켜 보면 조선에서는 당시 대륙을 석권한 청의 막강한 군사력은 도외시하고 망해가는 명을 도와 청을 쳐야 한다는 헛된 모화주의에 끌려 청의 침입을 자초하여 왕(인조)이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라는 치욕적인 항복을 해야만 했다.
하멜 표류기에서는 조선과 일본이 서로 전쟁을 벌인 끝에 제주도와 대마도를 서로 맞교환 했다는 기록이나 실제로 일본 에도시대의 6가지 처형 방식 중 하나인 노코기리비키(鋸挽き)를 일본이 아닌 조선의 형벌로 잘못 기록한 부분 또 조선에서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없었던 일본식 대처승(결혼할 수 있는 승려)에 대한 묘사와 조선이 일본에게도 공물을 바치고 있었다"는 잘못된 기록들이 발견된다.
하멜 표류기에 대해서는 확실한 교차검증을 통한 접근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잘못된 정보들 또한 별 다른 검증이나 지적없이 그대로 실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하멜 표류기에는 제주도와 대마도의 사례나 조선이 일본에게도 조공을 한다는 기록들 처럼 매우 심각한 오류들 또한 분명 사실인것처럼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