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정치적 관심 때문이다. 얼마 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현되었듯이 우리사회는 여전히 선호하는 정치 이념 또는 성향이 양분(보수 또는 진보)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대선 결과는 보수 측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개인적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사회 현실에서 보면 ‘진보’라는 개념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로 느껴지는 데 비해,‘보수 내지 보수주의’는 왠지 부정적이고 과거 지향적으로까지도 형상화 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그간 보수 또는 보수주의라는 개념을 왜곡하여 이해하고 있었지는 않은지 심한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보수 또는 보수주의 개념에 명확히 다가가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의 공통점은 강조하고 차이점은 최소화 하겠다는 취지로 여러 명의 필자가 쓴 다양한 글을 하나로 묶었는데, 불행하게도 이 점이 나에게는 보수주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난해하게 느껴졌다. 당시 이 책의 기획은 영미 보수 사상의 두 가지 뿌리인 전통주의, 자유지상주의를 화해시켜 공동의 적에 맞서게 하자는 데 있었다.“보수에게 공동의 적이란, 역사·경험을 무시하고 들뜬 이상만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거짓 예언’으로 규정된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집단의 요구를 강제하는 사회주의적 요구가 저자들에게는‘공동의 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인간은 타락한, 혹은 보다 세속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결함 있는 존재다. 불평등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계층과 위계질서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보수주의는 현실주의의 한 형태이므로 이를 인정한다. 통치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로 경쟁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고 한다. 아울러 보수주의는 “전통의 범위 안에서 작동해 온 이성의 역사”를 신뢰한다. 그래서“우리 사회의 나쁘고 망가진 그 무엇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해 그 모두를 파괴해 버리려 애쓰는” 이들을 불신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인용하는 보수주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좋고 효과가 있는 그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그 위에 무언가를 더 보태려 노력한다”는 소박한 신앙고백은 보수 사상의 가장 대중적인 뿌리일 것이다.
동시에“보수주의를 자유주의의 지류이거나 그 계보에 속한다고 보며, 자유주의의 '고전적' 그리고 가장 진정한 형태가 보수주의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민주주의가 왜 만병통치약이 아닌지, 아무리 이론적으로 완벽한 정부형태가 있다고 해도 왜 모든 나라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지를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그리고 설사 결점이 있더라도 각 민족과 국가에는 그들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그들의 현실에 맞는 최선의 정부가 따로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요컨대, 모든 나라에 모두 통하는 정치 제재의 모범 답안은 없다고 본다. “바람직한 헌정질서는 국가와 그 구성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양태를 보일 수 밖에 없다”고 이 책의 필자들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타인이 만들어준 정답을 답습하기 보다는 한국적 보수주의의를, 아니 한국적 헌정질서를 우리 스스로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인간 존재의 도덕적 기초를 이해한다는 사실이,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전례와 계속성을 존중한다는 점이 현대 보수주의를 존재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또한“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바란다면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는 데서 보수주의의 참 뜻과 가치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보수적’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고 현상유지의 신성함을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뢰할까 싶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오히려 보수주의는“인간의 진정한 필요와 성취가 무엇인지를 아는 날카로운 현실감각이다.”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드는 생각은 우리사회에서 익히 사용하고 있는‘진보’라는 개념이, 실은‘급진적 내지 급진주의’라는 개념으로 전환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이 생긴다. 왜냐하면‘보수(또는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한다면 속도에서의 차이일 뿐이지 보수(또는 보수주의)도 진보와 사이가 멀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나 자신은 ‘보수주의자’인가 혹은 아닌가, 질문을 조금 비틀어 ‘진보’(혹은 급진) 보다 ‘보수’라는 용어가 마음에 더 끌리는가 혹은 아닌가. 여기에 대한 내 마음 속의 솔직한 답변은‘아니다’에 가깝다. 이 책의 주장대로, 현재의 나 자신은‘보수’의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인간 존재의 도덕적 기초’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기독교를 비롯한 일체의 종교적 믿음 내지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 그리고 정치적 신념 내지 성향 상으로도 한창 나이의 이십 대인 관계로, 아무래도 불평등을 섣불리 인정하기 보다는 평등의 개념을 보다 선호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다. 근대 중국의 문호인 임어당은 “인생 스무 살 때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요, 마흔 살이 되었는데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일괄했다. 이 말이 왠지 나의 생각과 행동에 강력한 논거 내지 자신감을 갖도록 그리고 심지어 위안을 선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