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 첫 단원의 제목은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로 시작한다. 저자가 굳이 인류를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재 우리는 인간이 유일하게 불과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지만 10만 년 전에는 최소 여섯 가지 인간의 종이 살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첫 번째 Chapter 인 ‘인지혁명’에서 현대 인류만 존재하게 된 이유를 밝힌다.
15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에 나타난 사피엔스가 불과 7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다른 모든 인종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학자들은 이를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지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규명한다. 인지 혁명으로 인하여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이 바뀌며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지 능력의 특징 중 하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종교’나 ‘신화’와 같은 집단 의식이 발생하고, 단순한 표현에 불과한 동물들의 의사소통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언어’를 가지게 된 것이며, 수십 혹은 수백의 무리를 넘지 못하는 자연 생태계의 다른 어떠한 집단과 달리 수천 혹은 수만 명이 모일 수 있는 현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유발 하라리는 말콤 글래드웰이 소개한 바 있는 ‘150명의 한계’와 비교하며,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자연 상태의 인간은 결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크기는 제한적임에 주목한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하나의 ‘제도’에 단합하여 보다 큰 무리를 이루었고, 이 덕택에 동물들뿐만 아니라 다른 인류도 정복하였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사피엔스는 먹이사슬의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최상층부로 급속히 올라가게 된 순간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얼마 전 한국 방문을 방문하여 어느 토론에서, 많은 이들이 ‘인지(Cognition)’와 ‘지능(Intelligence)’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인공 지능은 지능은 사람보다 뛰어나지만, 인지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 인간이 진정 기계와 차이 나는 점은 ‘인지 능력’이란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인류의 발전이 농업혁명 덕분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는 두번 째 장인 ‘농업혁명’에서, 농업혁명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기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의 내용을 많이 빌려왔다. 이로 인하여 더 여유롭고 더 풍요한 삶을 즐기던 수렵 시절의 인간이, 좁은 지역에 모여 제한된 종류의 곡식에 의존하여 질병과 영양실조로 허덕이면서도 소수의 권력자들의 안녕을 위해 다수의 인간들이 생산과 노동에 매진하여야 하는 하락된 삶의 질을 감수해와야 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여러 세대 동안 사회가 바뀌었지만 그때쯤엔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특히 인구 증가로 인하여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역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이러한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 또한 ‘상상 속의 질서’를 가능케한 신화와 종교, 제도와 같이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었다. BC 1776년 경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것은 당시의 지도자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고, AD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문 또한 그러한 성격이었으나,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이 합리적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평등’의 개념에서, 바빌론 인들은 귀족과 노예로 구분되어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받아들인 것처럼, 평등을 주장하는 미국 독립선언문 또한 여자와 흑인들까지 자신들과 평등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급 제도와 국가라는 실체가 아닌 인간이 만든 것에 의해 이를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인다. 그에 비해 자연에는 합리적이라거나,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신선한 주장에 이어 인류 사회에 존재하는 제도의 실체와 미래의 인류 역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인류의 상상력은 화폐와 재산이란 것을 통해 ‘가격’과 ‘가치’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신용’이라는 것을 만들고 ‘경제’라고 부른다. 과거의 다신교 문화에서 일신교로 바뀐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고, 미래의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가 없다는 이유를 설명한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2단계 카오스계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이며(내일의 날씨와 같이),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석유 가격 예측과 같이).
여기에서 유발 하라리가 지속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피엔스의 능력이다. 흔히 ‘추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개념이다. 인간의 사회는 ‘신화’의 성립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은 롤로 메이의 ‘신화를 찾는 인간’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신화나 종교, 심지어 사회 제도 또한 인간이 서로를 인정하기에 유지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화폐’란 때로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조 달러’짜리 짐바브웨 지폐를 한국에서는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편으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는 그의 주장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를 보는 우리는 몇 백 년, 몇 천 년의 시간을 한 번에 훑어보며 사람들의 업적과 그 사회의 변화를 평가하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백 년도 채 안 되는 삶으로 그 변화를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결정적으로 현대 문화를 이룩한 것은 산업혁명과 맞닿은 과학혁명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제1장의 인지혁명을 통해 인류가 추구해온 것은 우주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였지만, 실질적인 과학의 발전은 비교적 근래에 이루어졌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그노라무스 ignoramus - 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고대의 전통 지식은 오직 두 종류의 무지,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모를 수 있지만 그보다 현명한 누군가에게 물으면 해결할 수 있었고, 전통 전체가 모를 수 있지만 그게 무엇이든 중요치 않은 것이기에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은 중요성을 따지지 않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고, 한 개인보다 더 현명한 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얘기는 공자가 자로에게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러한 차이를 유럽에서 빈 공간이 많은 세계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최소 130권이 넘는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미래에는 ‘사피엔스가 아닌 인류와 다시 한 번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하지만 모든 학문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저자가 추구하는 것도 우리의 ‘행복’이다. 농업을 통해 인류가 정착하고, 산업과 과학이 발달하였지만, 우리의 삶이 과연 수렵채집인보다 더 행복할까? 란 그의 진지한 물음 앞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다’란 문구처럼, 인류의 미래는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새로운 의무에 갇히게 될 뿐이다. 좋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