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랑하는 문화유산 중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만든 것이 제법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도자기이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갔고, 그들은 낯선 땅의 권력자들을 위해 밤낮 없이 도자기를 구웠다. 그리고 도자기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한 자본의 원천이 되었고 다도를 비롯한 일본 문화의 진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우리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는 일본의 문화유산일까, 한국의 문화유산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나라, 교토, 우지, 오사카, 시코쿠 등을 직접 방문해 관찰한 일본 도자기의 역사와 조선 도공들의 흔적을 소개한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이었던 센노 리큐는 김시습의 자연주의를 일본식으로 절묘하게 변형했다. 일본인들이 찬양하는 센노 리큐 특유의 절제미와 청빈함은 사실 김시습, 나아가 조선의 미학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센노 리큐는 고려 다완을 특히 사랑했고, 조선 도공에게 다도에 쓸 차 사발을 굽게 했으며, 이것이 일본의 명물 '라쿠야키'의 시초가 되었다.
일본 도자기가 조선 도자기, 고려 도자기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나, 현재 조선 도자기의 명맥은 끊어진 반면, 일본 도자기는 전통문화의 정수로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명백한 실패이며 후손들의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땅에서 조선 도자기를 구운 조선 도공들의 노력은 모두 일본 도자사, 일본 예술, 일본 문화의 역사에 흡수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우리는 도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즐기지 않았다.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자를 천시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도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문화로 만들었다. 최고의 차와 음식은 도자기에 담아 즐겼다. 임진왜란이라는 혼란을 겪으며 우리는 훌륭한 도자기 장인을 빼았겼지만, 일본은 포로로 끌려온 장인들을 대우하며 기술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것이 훌륭한 돈벌이가 되고 진상품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었기에 가능하였지만, 일본에게 큰 기회를 부여한다. 중국의 도자기 수출이 막히고, 네델란드 상인을 통해 일본의 도자기가 유럽에 소개되고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도자기 수출을 통해 일본은 막대한 자본을 모으고 이 자본은 일본 근대화의 마중물이 되었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할 힘을 얻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현재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할 문화가 무엇이며, 지켜나가야할 문화가 무엇인지 생각하였다. 도자기로 대표되는 기술과 문화의 힘이 우리와 일본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며 화려하게 꽃을 피웠는지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