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장프랑수아 마리미옹이 엮은 《바보의 세계》는 무려 35명의 저자가 참여하고 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고고학자, 경영학자 신경과학자, 중국, 인도 전문가 등이 다양한 저자들은 인류 역사에서의 ‘어리석음’을 증언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류의 어리석음, 오류에 관한 역사책이 많이 나왔다. 《진실의 흑역사》 같은 책들이 그것인데, 사실 역사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한 방향 전환이 흔했던 만큼 역사책의 절반은 굳이 그런 제목이나 광고를 달고 나오지 않더라도 오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보의 세계》가 다른 점이라면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 속 어리석음을 다루고 있고, 또 그 어리석음이 면면히 이어지는 현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멍청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의 진화 자체가 오류라는 지적에서 시작한다(스티븐 핑커와의 대담). 신석기 농업 혁명의 시작 자체가 멍청한 선택이었고, 그 이후 지배 계급에의 복종, 전제군주제의 등장, 종교, 그리고 사이코패스라고까지 지적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 어리석은 인간의 선택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지역을 막론한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 인도 신화에서도 멍청이는 등장하고, 당연히 중국 역사에도 수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라고 다를 바 없다.
저자들은 역사 속에서 부당한 취급에 대해서도 다룬다. 유럽의 역사에서 야만족에 대한 취급, 여성에 대한 차별, 노예제, 반유대주의 등이 그런 것이다. 다른 책에서는 그런 역사를 오류나 멍청이, 어리석음으로 분류하지 않는데 반해 여기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반영되었다는 시각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리석지 않고서는 저지를 수 없다는 생각인 셈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멍청이라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편들고 변호하기도 한다.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저 정치가는 과연 뚜벅뚜벅 옳은 길을 가는 ‘우직’한 사람일까, 한 치 앞을 모르고 진창으로 빠져드는 ‘우둔’한 자일까? 혹은, 실은 교활한 사람일까? 흔히들 하는 말처럼 그 평가는 다름 아닌 ‘역사’와 그 주체들에 맡겨져 있다. 『바보의 세계』는 인류 역사 속의 수많은 ‘어리석은’ 인물과 행위, 나아가 그에 대한 당대 세간의 평가에까지 역사의 돋보기를 들이댄다.
중세의 점성술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과학적 학문이라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성을 띤 분야지만,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도리어 내로라하는 지식인들보다 더 과학적인 사고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수회와 ‘키보드 배틀’을 벌인 18세기 계몽주의자들처럼, 어리석다는 평을 들었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는 더 슬기로웠다는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있다. 변방의 보이아티아인을 욕한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아프리카의 피식민자를 깔본 프랑스의 식민주의자들처럼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한 쪽이 현대에는 더 어리석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바보의 세계』를 통해 읽어낼 수 있듯, 역사 속에서 어리석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늘 이렇게 복잡했다. 다채로운 멍청이들의 역사적 일화 하나하나도 흥미롭지만, 에피소드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본질적인 통찰을 던지는 책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인지도 모르고 다른 이들을 바보라고 모욕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짓들로 점철되어 있다. 저자는 프랑스어에서 멍청이(con)의 어원에서 시작해서, 진화의 과정에서, 역사와 종교 속에서, 여러가지 사회 현상과 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바보들과 이들이 영리한 척 저지른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들을 알아본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를 작은 챕터들로 나누어서 한계가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이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세 이래로 정신병의 치료를 위해 환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방식도 불사하지 않았던 정신의학에 대한 '광인으로 가득한 어리석음의 역사, 멍청이로 가득한 광기의 역사'와 인간을 기계적으로 개조하는 것에 대한 '트랜스 휴머니즘, 어리석음의 미래일까'의 두 챕터였다. 둘 다 인간을 고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을 가지지만, 전자는 이제는 잔인한 학대로만 보이는 가짜 의학에 대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아직은 가짜 의학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죽음을 거부하고 인간과 기계가 공진화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트랜스 휴머니즘은 휴브리스까지 거론되며 인간의 자만과 어리석음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