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는 ‘세계 주요 도시의 역사’라는 익숙하고 흥미로운 출발점에서 세계사 공부를 시작한다. 역사 공부는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일률적으로 암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도시’의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단순 명쾌하게 풀어낸다.
하루 한 도시 부담 없이 역사 여행을 마쳐나가다 보면, 어느새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세계사의 전체 흐름이 한눈에 보일 것이다.
그렇게 획일화된 세월과 싸워오다 보니 남은 훈장은 하얀 서릿발을 맞은 머리카락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늦게라도 인문학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싶다. 좋아하는 역사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그렇고, 문학이나 철학 등에 깊이가 더해지면서 이제야 나잇값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자부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30개 도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무시한 채 그냥 문화와 종교, 여행으로만 알고 있는 도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에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살펴보기 전에 역사적 이야기를 짚어 보기로 하자.
바빌론이라는 유명한 고대 도시가 있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있었던 도시이고, 헤로도토스는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답고 장엄하다'라고 평가를 할 정도였다. 바빌론은 성경의 '바빌론 유수'라는 이야기로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바빌론 유수'란 신바빌로니아 왕국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유다 왕국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바빌론이란 도시로 유대인을 끌고 갔던 사건을 말한다. 이후 두 차례 더 유대인을 포로로 끌고 간다. 그렇게 3차 유수 이후 40여 년 뒤에야 유대인들이 바빌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돌아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현재 이스라엘의 앙숙이라 할 수 있는 이란이란 나라의 은혜 때문이었다. 당시 신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현재 이란) 아케메네스 왕조에게 정복을 당했고 키루스 2세가 귀환해도 좋다는 포고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귀환하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포로로 끌려왔다고는 하지만 종교 박해를 한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에서 살 때보다 더 풍요롭고 안전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세기가 흐른 지금 이스라엘과 이란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있다. 인도 유럽어족에게 은혜를 받은 셈족이 오히려 원수로 되돌려 주고 있다. 중동 셈족의 피는 원래 계산에 빠르고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인지.
바빌론에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는 아주 유명한 장소가 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사막화가 되었지만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론은 성서에도 나오는 바벨탑이 있었을 만큼 유명한 도시였다. 하기야 '길가 메가 서사시'를 '노아의 방주'로 둔갑시켜 자신들의 구약에 도용해 놓은 걸 보면 유대인들이 상당히 부러워했다는 것을 짐작케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저작권 침해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우리가 여러 역사를 배우고 서로 교차하면서 연구해야 하는 이유도 헛소리를 늘어 놓는 사기꾼들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인에 의해 더 박해를 받았고 더 많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과 이슬람 아랍인은 같은 셈족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믿는 민족 대부분은 인도 유럽어계 민족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