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식과 역사의 보고인 책의 보존의 역사
이 책에 나오는 개개의 이야기들은 지식이 역사의 곳곳에서 공격받았음을 잘 보여준다. 제퍼슨의 양초는 지식을 보존한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 덕분에 아직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수집가, 학자, 작가, 그리고 특히 이 이야기의 다른 반쪽인 사서와 기록 관리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설은 도서관과 기록관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장소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무세이온에서 책과 학자들을 결합시킨 데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명성은 고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고, 역사를 통해 전해져 내려갔다. 그럼으로써 세계의 지식을 수집하고 조직화하는 그 사명을 모방하도록 다른 사회를 자극했다. 1647년에 출판된 『토머스 보들리 경의 생애』 서문은 그가 설립한 대도서관이 심지어 “이집트 도서관의 대단한 명성”조차 능가했다고 자랑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유산은 또한 사서와 기록 관리자들이 지식을 보호하고 보존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자극이 돼왔다.
중세 대학도서관의 학자들은 장서 이용을 난폭하게 차단당했다. 1549~1550년에 에드워드 6세 왕의 감독관들은 이 대학을 방문했고,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1556년에는 남아 있는 책이 없었다. 대학은 비품 판매를 담당할 고위 관계자 집단을 선임했다. 이 대학도서관에 본래 있던 장서는 96.4퍼센트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됐다. 오늘날 몇 권의 책과 15세기에 만들어진 돌 받침대 위의 옛 서가 그림자만이 그곳에 남아 있다.
책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앤서니 우드는 이 사건들이 일어난 지 백여 년 뒤에 쓴 자신의 책 『옥스퍼드대학의 역사와 유물』(1674)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종교개혁파가 가져간 책의 일부는 불태워졌고, 일부는 헐값에 팔렸다. 서적상에게도 가고, 장갑 만드는 사람에게 가서 장갑을 찍어내는 데 이용되기도 하고, 재단사에게 가서 자로 변신하기도 하고, 제본업자에게 가서 책을 제본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개혁파가 자기가 보려고 보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남은 것은 단 열한 권이었다. 보들리 도서관 서가에는 지금 단 세 권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파괴의 틈바구니에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서관들 가운데 하나가 자라났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