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사는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이나 학문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뉠 수 있겠지만,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역시 '행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행복의 기원>은, 이러한 낭만적인 대답에 '과연 그럴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은 정말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그리고 예상대로 '그렇지 않다'라고 확정지어 답한다.
저자는 사람이 사는 이유가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즉, 오래 생존하고 더 많이 번식하기 위해 산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과학적으로 여러 번 증명이 된 것이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생존확률을 높여야 길이 번창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행복'이 개입한다. 다시 말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인간은 행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하는 등등의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과 기쁨은 모두 인생의 목표가 아닌 도구로써 작용한다. 이와 같은 범주에서 느끼는 행복은, 인간의 사회성과 연관되어 있다. 다른 동물도 그렇지만 특히 인간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 안에서 잘 적응해야 하는 숙명이 있고, 따라서 사회에 잘 적응하는 만큼 행복도도 높아지게 되어있다.
이 책이 또 중요하게 다루는 점은, 행복을 느끼는 것도 결국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행복을 쉽게 느끼도록 타고난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되어있고, 때문에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난 사람이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살기 위해 행복해야만 한다니,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살기 위해 필요한 행복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라고 한다. 어차피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저 뇌의 화학적 반응일 뿐이다. 따라서 그 짧은 행복을 '여러 번' 느끼는 게 보다 더 중요하다. 강도보다는 빈도인 것이다. 이는 행복 별거 없다는 말이나 몇 년 전 유행했던 소확행이 꽤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얘기였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외향적 인간이 더 자주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행복도가 올라가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한다.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을 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람 때문에 피로하고 불행을 느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행복이 강도보다 빈도가 더 중요했던 것과는 반대로, 인간관계는 빈도보다는 강도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요즘처럼 자기 성격이나 타인 성격 분석에 관심이 지대해지고, 서로의 성격을 계량화해서라도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지는 요즘.. 그것도 다 행복하기 위해서 아닐까 싶다. 저자 말마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MBTI 이야기나 하며 보내는 시간이 내 생존을 위한 원동력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