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나서야 서울에서만 50년 넘게 살다보니 정작 궁궐에 대해 큰 감흥없이 지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 세계에서 유래없이 5개의 궁을 지닌 궁궐의 도시라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고, 정작 궁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줄곳 궁궐 근처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나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사생대회를 한답시고 창경궁 뜰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었고, 아이를 키우면서 경복궁을 드나들던 기억이 나에게 남아있는 궁궐에 대한 기억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창경궁은 청년시절까지도 나에게는 창경원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이름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일제가 조선의 품격을 깍아내리기 위하여 궁궐의 명칭을 바꾸고 동물원으로 전락시켜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 도성내 궁궐의 내력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혼란했던 왕권의 변천사를 자연스럽게 알수 있을 것이다.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지은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이다. 그러나,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면서 경복궁은 명실상부한 궁궐로서의 위상을 잃고야 만다. 일제 시대에는 대부분의 건물이 헐리고 대신 조선 총독부 건물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하다. .
경복궁은 준공당시 전체 755칸 규모의 거대한 왕궁이었으나 전란으로 인한 소실 일제의 건물 멸실 등으로 10분의 1 정도로 규모가 축소되기도 하였다. 다만 꾸준한 복원 노력으로 소규모이기는 하나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창경궁의 본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 창경궁은 궁궐로서의 독립적인 규모를 갖추기는 했으나 당시 왕이 기거하면서 정사를 보는 궁궐로는 거의 사용되지 못하였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당시 모든 궁궐이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시절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만은 화재 등으로 많은 피해를 입곤 했는데 순조때 이르러서야 대부분의 건물이 재건되었다. 그러나 1907년 순종이 즉위하자 순종의 거쳐를 덕수궁으로 옮겼고 일제는 창경궁을 대부분 헐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궁궐의 지위를 격하시켜 버리고 말았다.
창경궁과 이어져 있어 마치 하나의 궁궐로 보이기도 하는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의 백미로 불린다.
조선 건국 후 왕자들의 왕위 쟁탈전으로 도읍을 개경으로 옮겼다가 태종5년에 이르러서야 한양으로 재천도하게 된다. 이때 태종은 아버지은 태조와의 껄끄러운 관계로 인하여 경복궁을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궁궐을 건설하는데 그것이 바로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이 대부분 정무를 관장하던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배치한 것과는 달리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궁궐을 이루는건물들이 일정한 체계 없이 자유로이 배치되었다. 자칫 건물들의 배치가 무질서하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자연의 미를 그대로 살려 더욱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냈다.
사실상 조선시대 정무를 관장하던 정궁으로 쓰인 곳으로, 광해군 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250여년간 정사를 돌보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창덕궁의 정원인 '비원'은 조선시대 정원의 백미로서 최근에 이르러서야 대중에 공개되어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비원은 창덕궁과 창경궁에 딸린 북쪽의 정원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 정식 명칭은 후원, 또는 내원 등으로 불렸다. 비원이라는 말은 그 유례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일제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원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넓고 아름다워 왕실의 사랑을 두루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창덕궁과 불과 수키로 떨어진 거리에 수십년간 살면서 한번도 창덕궁을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서둘러 예약 버튼을 눌러야 겠다.
덕수궁은 임시왜란 이후 선조가 임시거쳐로 사용하던 곳이다. 구한말 고종이 머무르게 되면서 고조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로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웨딩 사진을 촬영했던 곳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역사적 사건이 많이 일어난 곳이다. 영친왕 이은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헌조의 계비 면헌태후 홍씨와 황태자의 자비 민씨도 별세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종이 왕위를 물려주고 13년간 함녕전에거 거처하다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덕수궁은 조선 말기 비로서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구한말 역사의 현장이었으며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궁궐이기도 한 곳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궁궐의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생각해보니 많지는 않지만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봤지만 한 도시에 이런 거대한 궁궐들이 있는 도시는 보지 못했던것 같다. 크게 자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