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의 한강이 쓰는 연예소설을은어떨까 하는 기대로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다. 이토록 무겁고, 두려운 이야기 인줄 알았으면 아마 난 선택하지 않았을 책이었다. 나의 조부모와 부모가 살았던 그 시대. 전쟁 전후의 역사는 위정자들의 통치편의에 의해 감춰지고 지워지고 기록되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역사를 배웠고 그런 역사관은 나의 무지와 무관심속에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이순간이 너무나 처참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소설의 배경은 제주 4.3사건이다. 주인공 경하는 한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내고 난 후, 눈 내리는 벌판과 검은 통나부와 밀려드는 바다의 꿈을 꾸게 되고, 그로 인한 고뇌로 끊임없이 유서를 고쳐 쓰는 작가이다.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오래된 친구 인선에게서 지금 올 수 없냐는 다급한 문자를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인선에게 향한다. 사고로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 봉합한 채 누워있는 인선을 마주한다. 그녀는 봉합한 부위를 일부러 바늘을 찔러 피를 내는 일은 3분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다며,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신경이 산다고 말하고 있는 인선의 말은 이 소설이 전하고자 했던 화두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인선이 경하를 찾았던 이유는 제주도 집에 있는 앵무새 '아마'에게 물과 먹이를 주라는 것이었다. 그런 인선의 부탁으로 경하는 그길로 제주도 집으로 향하게 되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공항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는 눈과 바람이 앞을 가로막는 길을 마지막 버스를 타고 p읍에 도착해, 오지 않는 지선버스를 무작정 기다리다 포기할 무렵 온 마을버스를 타고 인선의 마을인근에 도착한다. 깜깜한 저녁, 무릎까지 차오른 눈 속을 걸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겨가며 가까스로 인선의 집에 다다른다. 경하가 도착한 인선의 집 앵무새 '아마'는 이미 죽어있었고, 폭설로 전기와 수도마저 끊어져 추위와 싸워야 했고,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위경련성 두통으로 경하는 죽을 만큼 고통을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디쯤에 다다른 경하는 꿈인 듯 인선을 만난다. 마치 생사의 경계 혹은 그 너머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처럼.
인선은 그녀의 어머니 정심과 외삼촌 정훈,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잠잠하게 풀어낸다. 제주4.3사건과 대구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경하는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있다.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그러한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사력을 다해 가족을, 그때의 슬픔을 피하지 않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잊지 않겠다는 확고한 집념. 그것이야 말로 지극한 사랑이라는 걸 알아지게 했다.
아무리 상처로 얼룩져도, 돌아보기 싫어도 결국은 통증을 느껴야 인간은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은 딱지가 앉아 상처가 다 낫는일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한강의 소설은 묵직한 주제와 수려한 문장이 압도적이다. 읽는 내내 이런 표현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경의로울 지경이다. 제주도 방언을 그대로 옮긴 목격자들의 진술은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 다듬어 지지 않은 상처가 고스란히 마음에 닿았다. 그 장면을 읽는 내내 작가는 독자들에게는 불친절 했을지 모르나, 그 일을 겪어냈던 피해자와 목격자 그 가족들은 아마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과오를 범한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낼 만큼의 힘이 있는 권력자들은 그래서 성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과오로 얼룩진 과거일지라도,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며, 후손들은 오염된 역사가 아닌 진실된 역사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정심의 빛나는 눈을 닮아야 한다. 좀 늦었더라도 잘못된 일은 바로잡으면 된다. 그래야 여기, 대한민국의 오늘이 더 견고해 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