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 나는 싱가포르 출장 중이었고, 뒤이어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합류한 회사 대표가 내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주었다. 6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은 밖으로부터의 방해를 일체 받지 않고서 자신만의 생각을 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기는 좋은 시간. 아마도 같은 생각으로 대표는 유현준의 책을 다 읽었을 터였다.
오늘날 학문은 세분화되어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서로 파편화되었다. 생각해보면, 르네상스 시기의 지식인들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주제에 천착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보더라도 예술과 과학에 그가 보인 비범한 관심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통섭의 필요성을 깨닫지만, 지금은 그 간극을 메우기는 어렵다. 이래저래 필요성은 이야기하지만, 각자의 이익이 우선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은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건축가들의 책을 읽는다. 많은 사람의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접했던 건축가의 에세이를 읽으면 그 옛날의 다재다능한 르네상스형 인간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글을 읽고 내가 접하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았다. 건축이란 단순히 어떠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인문학적 관점으로의 접근과 철학이 필요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구조물이라는 물리적 특성은 과학적 접근법을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대감염병의 유행. 거의 2년 동안이나 우리는 일상의 자유를 상실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미래의 한 모습이라고 상상했던 일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나는 유현준이 그의 이전 에세이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었고, 그가 쓰고 싶은 것들은 충분히 다 썼을 것이라고 속단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빈약한 상상력이 문제였지만.
그러나 그는 스스로가 가진 관찰과 사유를 통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공간의 미래에 대해서 농밀한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플랫폼 경제, IOT, 클라우드, 핀테크, 암호화폐, 블록체인과 같은 것들이 흔히 나를 포함한 우리가 듣고 있는 주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술적 측면으로, 즉 주로 경제적 관점으로 그 변화를 가늠했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