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이라는 책의 제목,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시기를 의미한다.
인간에 대한 공포와 현실 증오를 가지고 있던 작가가 자살을 전제로 쓴 것이며, 아마도 이 책에 실린 글을 쓸 때, 작가는 '나의 유작이자, 유서가 될 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둡지 않다. 특히 유년기 때 시골에서 느꼈던 반짝거리는 더움, 파란 시원함, 어른이 되어가던 초록잎의 색 등 다채로운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내가 느꼈던 작가에 대한 허무주의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였다.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읽으며 흥미를 느낀 점은 안티테제의 예술로서 강력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작가 본인을 투영시킨 자조적 인물이다. 그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살았다. 부유한 집안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인물의 다각적인 면모는 일찍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 책에 실린 <추억>이라는 단편에서 앞으로 인간실격까지 쭉 이어질 그의 문학 세계를 미리보기 할 수 있던 작품이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다자이 오사무와 같이)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태어났고, 연약했던 어머니 대신 다른 여자들의 손에 컸으며, 다른 형제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부유한 집의 아들이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부잣집 엘리트 도련님의 행세를 잘 해낸다. 교실에서는 하품을 하지만 고향집으로 돌아갈땐 꼭 하카마를 입는다던지, 체벌을 당하며 다니는 학교지만 고향집 동생들에게는 의기양양하게 학교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실격에 보이는 익살꾼의 모습을 가진 주인공이다. 그는 못생겼는데도 자긍심은 높았다.
나는 작가의 초기작품들을 모아둔 이 글들이 데카당스의 길로 들어서는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은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일본 청년들의 허무주의와 맞물려서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된다. 병적이고 향락주의적인 그의 작품속에서
허망함과 상실감을 가졌던 청년들은 대리만족을 얻었을 것이다. 괴로운 현실에서 자신이 직접 파멸의 길로 갈 순 없으니, 그의 소설에서 도피처를 찾았던게 아닐까 싶다. 이런 다자이오사무의 소설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선을 다 할수록 오히려 좌절이 커지는 청년들이 가진 자포자기의 심정을 그의 책에서 위로를 얻고 있다.